◆예수님을 초대한 베타니아의 한 집에서 있었던 일을 요한복음은 전한다. 그곳에는 소생한 라자로가 손님들과 함께 음식을 들고 있었고, 마르타는 시중을 들었으며, 마리아는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아드렸다. 중요한 것은 마리아의 행동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인데, 예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계셨다는 점이다. 예수님의 죽음을 감지한 마리아는 저들의 악한 마음을 기워 갚기라도 하듯 순 나르드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었다.
유기서원기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사순 시기를 기도와 극기로 열심히 보내신 아버지는 부활 대축일 새벽 4시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셨다. 일주일 전 아버지는 “오늘 할아버지 산소에 가는데 함께 가지 않을래?” 하고 나를 초대하셨는데, 그때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어 응하지 못했다. 그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통화가 될 줄은 몰랐다. 그날 아버지는 선산에 가셔서 당신이 묻힐 자리를 보고 오셨다고 했다. 당신의 죽음을 예견하신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하셨을까? 아버지의 예견을 감지하지 못한 나는 아버지와의 마지막 때를 함께하지 못했다.
10여 년 전 친척 수녀님이 나를 부르시더니 “수녀는 내가 힘들 때 왜 옆에 없느냐?”며 함께하고 싶은 원의를 드러내셨다. 그 수녀님이 일주일 후에 돌아가실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그때도 함께해 드리지 못했다. 소임이 너무 바빴던 것이다. 바쁜 것이 죄다. 내가 바빠서 아픈 사람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함께하지 못했으니 그것이 죄다. 나이가 들고 보니 잘 죽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 죽어가는 사람 곁에 함께하는 것도 더없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주간 월요일 죽음을 앞둔 예수님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드리고 싶다. 죽음을 앞둔 이웃과 마음으로 함께할 사랑의 여유를 찾아야겠다.
서효경 수녀(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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