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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0년 뒤에 내가 무엇이 되어 있을까를 지금 항상 생각하라 - 정호승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8-04-12 조회수634 추천수3 반대(0) 신고
 
 
 
 

10년 뒤에 내가 무엇이 되어 있을까를 지금 항상 생각하라 - 정호승



  1960년대 후반, 제가 고등학생 때의 일입니다. 지금은 주택가가 되어버린 동대구역 인근의 야산에 올라 형과 대구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아마 할아버지 할머니 묘지가 있던 산이라 성묘를 하고 내려오는 길이었을 겁니다. 당시 대구는 인구 60만 정도 되는 대도시로 산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시내가 무척 크고 넓게 느껴졌습니다. 


  형은 멀리 대구 시내를 한참 내려다보다가 불숙 우스갯소리를 꺼냈습니다. 

“호승아, 더 대구 시내 한복판에 앞으로 내가 만나 살 여자가 살고 있을 거야. 그렇지? 그런데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형은 농담 삼아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픽 웃었습니다. 

“아마 호승이 네 여자도 지금 저기 있을 거다.”
  형은 그 말이 유쾌한지 킥킥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호승아, 앞으로, 10년 뒤에 네가 무엇이 되어 있을까를 항상 생각하며 살아라.”

저는 형이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나 하고 퍽 의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난 10년 뒤에 정신과 의사가 되어 있을 거다.”

저는 그때야 형의 말뜻을 알아차리고, 10년 뒤에 내가 무엇이 되어 있을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막막하기만 할 뿐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1년이 지나면 또 1년이 지난 그 시점에서, 5년이 지나면 또 5년이 지난 그 시점에서 10년 뒤의 나를 생각하는 거야.” 형은 얼굴에 웃음기를 거두고 어느새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래, 형은 의과대학생이니까 틀림없이 정신과 의사가 되어 있을 거야.”
  나는 형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10년 뒤에 내가 무엇이 되어 있을까. 아마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도 갔다오고 어디 직장을 다니겠지’ 하는 생각을 막연히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후, 형과 나는 더 이상 그런 대화를 나눈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형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베트남전에 참전한 뒤 곧바로 미국으로 유학 가 정신과 의사가 되었습니다. 저는 형의 그 말에 힘입어 ‘아, 나는 10년 뒤에 시인이 되어 있을 거야’하고 생각하다가 시인이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형의 그 말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항상 10년 뒤의 나를 그려보면서 살아왔습니다. 어떤 때는 제가 그런 대로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떤 때는 그리지도 않은 그림이 그려져 힘들고 고달픈 삶을 살 때가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지금도 제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가까운 이들에게 곧잘 그런 말을 합니다. 어쩌다가 고등학교에 문학강연이라도 가면 학생들에게 꼭 그 말을 강조합니다. “10년 뒤에 내가 무엇이 되어 있을까를 오늘 지금 생각하라. 그리고 1년이 지나면 또 그 시점에서, 2년이 지나면 또 그 시점에서 10년 뒤에 내가 무엇이 되어 있을까를 생각하라. 그러면 생각한 그 모습 그대로 내 삶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말을 형을 대신해 제가 합니다. 


  나의 미래는 지금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나의 미래는 나의 미래가 결정짓는 게 아니라 나의 오늘이 결정짓습니다.


  저는 지금 10년 뒤의 내 모습이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봅니다. 만일 건강이 허락되어 그때까지 살아 있다면, 저는 60대 후반에 이른 ‘시를 쓰는 노인’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기쁠 것입니다.

 

  

 


Souvenirs D`enfance(어린 시절의 추억) -Richard Clayde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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