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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목자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8-04-14 조회수809 추천수13 반대(0) 신고

 

  

‘양’하면 양순하고 포근하고 귀여울 것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런데 양은 실상 지저분하고 미련하기까지 하단다. 

추울 때는 떨어져 자고 더울 때는 붙어 자는 습성이 있다는 이야길 들었지만

그것이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처음 푸른 초원에 있는 양떼를 직접 본 것은 이스라엘에서였다.

풀밭마다 누군가 갈퀴로 줄을 그어놓은 듯한 줄이 죽죽 나 있었다.

저 줄이 대체 무엇이냐고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양이 지나간 자국이라고 가르쳐주었다.

의아해하는 나에게 가이드는 재미있는 이야길 들려줬다.

 

양은 무조건 앞으로만 전진하면서 풀을 뜯어 먹기 때문에

양이 지나간 자국은 늘 줄무늬가 된다는 것이다.

절벽도 좋고 계곡도 좋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앞만 보고 가기 때문에

목자가 늘 양떼의 앞에 서서 안전한 곳으로 인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늘 앞장 서서 양떼를 이끌기 위해서는 풀이 많고 물이 있는 좋은 곳이 어디인지 

미리미리 알아놓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위험에 대해

미리미리 대책을 세워 놓아야 한단다.

왜냐하면 아무도 없는 들판에서 막상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도와줄 사람도 없고

우왕좌왕 하다가는 양떼가 흩어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목자 한명의 손에 양떼의 운명이 모두 맡겨져 있는 셈이다.

 

어떤 교수 신부님이 유학시절에 목동 실습을 해보신 이야길 해주셨다.  

대개 Oh, Denny Boy 와 같은 노래를 통해서 목동이 낭만적인 직업일거라 상상하지만

 실제로는 보통 힘든 직업이 아니라고 한다.

 

 

신부님이 실습하던 날은 무더운 여름이어서 지열이 50도가 넘게 달아올라

초원은 마치 찜통과 같았단다.

신부님은 실습생이라 뒤에서 따라가고 있었고, 책임목자는 앞에서 양떼를 인솔하고 있었다.

하루종일 강렬한 태양을 피할 수 없어 지칠 대로 지쳐있던 때였다.

 

마침 초원 가운데로 난 고속도로를 건너게 되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커다란 트럭이 눈 깜빡할 사이에 양떼를 받아버렸다.

깜짝 놀란 신부님이 앞으로 달려갔을 때는 이미 처참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앞서가던 목자가 잠시 나무 그늘에 들어가 쉬는 동안, 양 무리는 무조건 앞으로 밀고 나갔고,

목자가 차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신부님은 여기저기 널려있는 양들의 시체 가운데서 아직 살아있는 양 한 마리를 보셨다.

허리 아랫부분이 다 터져나갔는데도 상체만 버둥대며 고통스럽게 울어대던 양.

그 끔찍한 모습이 오랫동안 뇌리에서 떠나질 않으셨단다.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그 양의 모습이 가끔씩 떠오른다고 하셨다.

 

더욱이 당신도 목자라고 일컬어지는 사제이기 때문에 두고두고 그 생각이 나셨다고 한다.

목자인 사제가 주님의 양떼를 잘못 인도하였을 때도

양들은 그렇게 큰 상처를 받고 울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셨기 때문이란다.

사제는 바로 그런 중책을 맡은 사람들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어떻게 대충대충 사제가 되려고 하느냐고 신학생들을 나무라셨다.

혹시라도 평생 생계 걱정 안 해도 되는 소위 ‘철밥통’이 탐나서 들어온 사람이 있으면

지금 나가라고 호통 치셨다.

사제가 되어서 신자들 위에 군림하며 안일하게 살아가려면

지금 나가는 것이 모두를 위해 좋다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신학생들이 사제가 되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어떤 사제가 되어야 하는가가 중요하다고 언제나 강조하셨다.

신학생들에게 무섭기로 유명하신 그분의 말씀을 듣는 교실의 분위기는 늘 숙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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