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산꼭대기에 위치한 방갈로식 기도의 집에 머문 적이 있다. 경당에는 처음 대하는 성모님 이콘이 놓여 있었는데, 한 손으로 말씀 두루마리를 든 예수님을 안고, 고개를 약간 기울여 다른 한 손을 예수님 귀에 댄 모습이었다. 정말 나의 모든 말을 다 들어주실 듯한 자세였다.
혼자 기도하면서 참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리고 평화와 위로를 얻었다. 나중에 ‘들음의 성모 마리아’ 상본을 갖게 되어 성무일도에 꽂아놓고 그 은혜로운 시간을 기억하며, 들음(경청)에 대해 자주 묵상했다.
신자들과 만날 때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기보다 오히려 더 많은 말을 했다. 이웃의 말을 경청하고 마음을 헤아려 주는 잠시의 여유로운 시간과 침묵의 순간을 갖지 못하고 분주한 모습만 비쳤던 것을 반성한다. 더군다나 편견과 선입견을 갖고 그 사람이 말하는 내용을 건성으로 듣거나 분석하기까지 했다. 어느 순간에는 대화가 아닌 논쟁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경청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과 변화가 필요할 것인가!
오늘 복음에서, 성전 안에서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는 유다인들의 말을 듣는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 예수께서는 이미 알렸지만 듣지 않았던 그들의 불신앙에 대해 반복해 언급하신다. 그들의 완고한 마음과 고정관념으로는 그동안 삶을 통해 분명하게 알려주신 예수님의 신원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신을 비우고 침묵할 줄 아는 사람만이 계시의 말씀을 잘 알아들을 수 있다.
김연희 수녀(예수 수도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