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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대한 사랑이여!!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8-05-09 조회수649 추천수10 반대(0) 신고
 

 

 

복음: 요한 21, 15-25

 

부활하신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나타나시어 세 번씩이나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는 대목은 영화 '굳 윌 헌팅'을 연상시킨다.

 

'윌 헌팅'(맷 데이먼 분) 은 고명한 수학 교수들도 풀지 못하는 문제를 단숨에 풀어내는 천재다.

그러나 그는 자신은 물론 이 세상 어느 것에도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불행한 청년이었다.

무언가 그의 마음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 있을 것 같았다.

마침내 수학과 교수의 도움으로 심리학 교수 숀(로빈 윌리엄스 분)을 만나게 된 윌 헌팅.

 

늘 냉소적이던 윌이 결정적으로 마음을 바꾸게 된 인상적인 장면이다.

윌이 어린 시절 양부에게 매일밤 폭행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된 숀 교수는,

"그것은 네 잘못이 아니었다!"고 이야기한다.

윌은 정신 심리학 책들은 환히 꿰뚫고 있다는 듯, "안다"고 대답한다.

또 다시 숀은 “그것은 네 잘못이 아니었다!” 고 같은 말을 반복한다.

윌도 역시 '잘 알고 있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숀은 마치 못 들은 사람처럼 윌의 눈을 들여다보며 똑같은 말을 다시 해준다.

이에 알고 있다며 신경질을 부리며 대답하는 윌.

그래도 숀은 그치지 않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같은 말을 한다.

윌은 숀 교수에게 마구 덤벼들면서 '안다'고 하다가 이윽고 그의 품에 안겨 흐느낀다.

 

그로부터 윌은 새롭게 태어난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자기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능력을 자신과 사회를 위해 쓰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무엇보다 윌이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 가장 감동적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없는 동안에, 베드로가 대신 목자가 되기를 원하셨다.

여기서 예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양’이라고 지칭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백성에게는 ‘지도자’가 필요하지만, ‘양’에게는 ‘목자’가 필요하다.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탁월한 지도력, 명석한 두뇌, 앞날을 예측하는 통찰력들이 필요하지만,

‘목자’에게는 그런 것보다 우선적으로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어떤 사랑이 필요할 것인가?

 

 

양들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양들 하나 하나를 잘 알고 있는,

우리 밖에 있는 양들까지도 모두 한 우리로 모아오는 사랑이다.

즉 헌신적인 사랑, 세심한 사랑, 경계를 뛰어넘는 큰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그 사랑은 양들 상호간에 일치를 이루는 가장 강력한 접착제이며,

공동체 안에 넘치는 사랑은 결국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가페와 필로가 함께 쓰여졌다.)

 

그러므로 최 일선에 서있는 목자는 주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양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무엇보다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세 번의 사랑 확인은 그래서 사랑에 사랑을,

그 사랑에 더한 사랑을 보태야 한다는 것,

결국 다함없는 사랑으로 넘쳐흐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베드로 자신부터, 사랑의 상처로부터 회복되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일종의 심리 치료를 해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요한의 아들, 시몬" 이라고 부르신다.

이는 베드로라는 이름이 주는 공적 사명과의 연계성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친밀함의 관계 속으로 부르시는 것이다.

참된 목자이신 주님이 시몬이라는 양의 모든 것을 낱낱이 알고

그를 치유시켜주시기 위해 부르시는 것이다.

 

한번이 아니라 두 번, 두 번이 아니라 세 번.

알고 있지만, 또 묻고, 다시 또 묻는 이유는,

주님께 그 사랑고백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바로 베드로 자신에게 절실히 필요했다.

 

그도 주님 앞에서는 치유 받아야 할 한 마리 양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베드로의 가슴 깊이 묻어둔 배반의 앙금을 말끔히 풀어주신다.

마치 숀 교수가 윌에게 "네 잘못이 아니었다"는 것을 몇 번씩 확인 받음으로써  

그저 머리로가 아니라, 가슴으로, 피부로, 전 존재를 통해

"그때는 너무 어려서, 너무 두려워서, 너무 약해서 어쩔 수 없었음"을 받아들이게 해준 것처럼.

 

 

여기서 또 한가지, 베드로가 세 번의 사랑 고백 후에야

비로소 양을 맡은 것이 아니라는 것도 눈여겨본다.

맨 처음의 부족한 대답 후에도 이미 그분의 양들을 맡았다.

즉 풍성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주님의 양을 맡을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완전히 치유된 사람만이 목자가 될 자격이 있다는 것이 아니다.

 

이 세 번의 사랑 확인은 어쩌면 일순간에 일어나는 고백이 아니라,

목자가 된 이후, 일생을 두고 추구해나가야 할 고백일지 모른다.

 

베드로 역시 '주님의 양'들을 위해 자기의 목숨까지 내어놓는

완전한 사랑을 보여준 목자가 된 것은 마지막 순간에서다.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는 네로의 통치기간인 서기 64년경에 십자가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그는 예수님과는 자세를 달리하여 거꾸로 매어달리겠다고 자청했다한다.

 

 

오늘 나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시는 주님의 눈길을 만난다.

거듭 거듭 물으시는 그분을 마주하고 “예! 사랑합니다.” 하고 자신있게

나의 전존재를 걸어 그분 사랑에, 이웃 사랑에 응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 위대한 사랑이여!

두려움 없는 사랑의 힘이여!

그 사랑의 힘이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기적을 일으키소서.

 

 

 

 

 

 

 

 

 

 

 

 

 
 
 

 

사진: 신학교의 성모의 밤, 이건욱 신학생이 찍은 것을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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