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5월 11일 야곱의 우물- 요한 20, 19-23/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8-05-11 조회수402 추천수1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요한 20,19-­23)
 
 
 
 
예수님이 그렇게 허망하게 가실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꼭꼭 숨어 있습니다. 다음은 분명 자신들 차례라고 여겼습니다. 막달레나가 예수님을 뵈었다는 얘길 듣긴 했지만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습니다. 설상가상, 속수무책입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이 들이닥치는 것보다 더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엊그제 장사 지낸 분이 막달레나 말대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문이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에 서셨습니다. 돌무덤을 열고 나오셨듯이 닫힌 문을 통해서 나타나셨습니다. 부활한 예수님은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현존하십니다. 인간의 차원을 극복하고 뛰어넘으셨습니다. 공간의 제약을 벗어나 어디에나 두루 계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닫힌 문을 여셨듯이 닫힌 세상을 여실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영적인 몸’(1코린 15,44; 필리 3,21)을 지닌 분이십니다. 예수님 몸소 문 밖에서 문을 뚫고, 죽음 저편에서 죽음을 건너 이리로 오셨습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고별 만찬 때도 평화를 이별 선물로 주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14,27) 평화는 불안과 공포를 이겨내는 데 꼭 필요한 것입니다. 고통과 죽음을 뚫고 성취한, 부활과 승리의 참평화입니다. 이 평화는 세상의 모든 갈등을 풀어갈 것입니다.
누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주십니다(20절). 부활하셨지만 여전히 몸을 지니셨습니다. 온갖 수모와 고생을 다 겪으신 바로 그 몸, 그분이십니다. 부활은 희뿌연 환상이 아니었습니다. 부활은 세상의 갈등과 고통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습니다. 다만 극복될 수 있음을 보여주셨을 뿐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20ㄴ절) 그들은 주님을 뵈었습니다. 공포의 분위기가 부활의 기쁨이 충만한 분위기로 바뀝니다.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14,18-­19), “내가 세상을 이겼다.”(16,33ㄹ)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거부할 수 없는 진리를 그들은 보았습니다. 제자들이야말로 진정한 부활의 목격 증인입니다.

 
예수님은 들뜬 분위기에 젖어 있지 않으시고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당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21절) 요한 신학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한테서 파견되셨습니다. 당신의 사명을 온전한 순종과 사랑으로 완수하셨습니다. 아버지께 파견되셨듯이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무력한 그들이 그냥 맨몸으로 세상에 던져지지는 않습니다. “성령을 받아라.”(22ㄴ절) 이미 최후 만찬 때 하신 약속입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15,26) 진리의 영이신 분이 제자들의 보호자로 나서십니다.
성령을 주시기 위해 ‘숨을 불어넣는 것’은(22절) 생명을 주는 행위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실 때 하신 것과 같습니다(창세 2,7 참조). 부활하신 예수님이 불어넣으신 성령을 통해 제자들은 새 생명을 얻어 새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예수께서 직접 성령을 불어넣어 주시고 그분께 직접 파견되었으니 제자들은 이제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용서는 하느님께 속한 것이었으나 예수님은 아버지께 받은 권한도 제자들에게 함께 주어 보내십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23절) 요한은 예수님의 활동 전체를 ‘용서’라는 말로 요약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결실은 용서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용서받고 구원받았습니다. 성령을 받는 일은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받는 일과 연결됩니다. 참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도 화해와 참회·용서가 필요하고, 그래야 성령을 받아 새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위임받은 제자들의 어깨가 무겁습니다. 제자들은 공동체를 대표합니다. 매고 푸는 엄청난 권한이 교회 공동체에 주어집니다. 선물인 동시에 소명입니다. 예수님의 소명이 제자들의 소명이 되었고 예수님의 일이 제자들 손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23절) 죄를 용서받지 못한 자에게는 구원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다른 이의 구원이 우리 손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이 불어넣으신 성령을 받은 이라면 용서를 실천할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공동체라면 서로 화해하고 일치하는 데 온 힘을 다할 것입니다.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공동체는 평화를 잃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성령을 이어주는 마지막 소명을 완수하십니다. 전에도 몇 번이고 예고하셨던 성령, 그분을 당신 온몸으로 전해 주셨습니다. 살아 있는 숨으로 오신 성령은 풀 죽은 제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먼 길 떠나는 제자들의 발걸음을 재촉하며 제자들의 입을 통해 예수님을 전할 것입니다.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1코린 12,3) 성령은 용서하는 권한을 위임받은 제자들의 결단이 모두를 위해 공평하게 나눠지는지를 판가름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주셨습니다.”(1코린 12,7)
강지숙(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