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아버지와 복음을 부끄럽게 여겨서는 안된다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5-15 조회수608 추천수2 반대(0) 신고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마르코복음서 8,27 ─ 9,1>
 
.................................................................................................................................


성모님 공경 때문에
 
아버지와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면 안된다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요한복음서>
 
 
파티마의 루시아 수녀님의 전언
 
"마귀는 하느님께 가장 거슬리는 것 (우상숭배)과 아주 짧은 가능한 시간에 가장 많은 영혼을 얻을 수 있는 방법( 마귀의 방법 )을 알고 있다. 마귀는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된 영혼들을 탈취하기 위하여 모든 수단을 다 쓴다. 왜냐하면 이런 방법으로 마귀는 지도자에 의해 포기된 신심 깊은 영혼들이 떠나게 하는데 성공할 것이며 그리하여 더욱 쉽게 그 영혼들을 붙들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 없이는 모든 것이 결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힘을 얻기 위해 부지런하고 주의 하지 않으면 우리는 넘어질 것입니다. 하느님의 힘 만이 우리를 단단히 서 있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봉헌되셨다
 
 
누구에 의해 봉헌되셨는가
하느님의 것들은 자기 것으로 취하시지 않으시는 겸손한 나자렛의 동정녀 마리아, 성모님께 의해서 성전에 봉헌되셨다.
 
누구에게 봉헌되셨나
아기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되셨다. 그리고 예수님의 전 생애는 ''아버지의 사랑''을 드러내신다. <가톨릭교회교리서>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되어야 하는가)
성모님의 눈길 아래, 예수님을 따라서 (닮아) 주님 그대로의 살과 피로서 (성체성사) 아버지께 봉헌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에 성모님과 모든 성인성녀들과 함께 완전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결합된다.
 
 
예수님과 복음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은 모든 것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 안에 집착을 끊는 것을 말한다. 집착에는 언제나 자신과 결부되어 있다. 사실 모든 것을 버려서는 안된다. 있는 그대로 모든 것과 조화로와야 한다.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은 자신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모든 것을 없애는 것은 생명이 아닌 죽음뿐이다. 모든 것에 생명이 살아 나도록 감미로운 숨결을 불어 넣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을 모든 것을 없애는 파괴로 여겨서는 안된다. 모든 것 안에 얽매여 있는 자신의 탐욕과 공명심의 집착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육정과 욕심이 지나치면 모든 것을 자기 소유로 삼아서 자신을 버리지 못한다.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내어 줄 수 있고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덜 가질 수 있을 때 육정의 온갖 사욕에서 떨어질 수가 있는 것이다. 모든 것들이 자신에게 짐이 된다고 하여 벗어나고자 이것들을 없애 버리려고 한다면 그것들은 언젠가 다시 되돌아와서 자신을 한순간에 덮쳐 버릴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은 모든 것을 없앤다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신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것''을 자기 안에서 자신을 비워 ''모든 것''들로 감싸 안을 때 이는 없애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생명을 주는 것이며 ''모든 것''에 사랑이 풍성해 지는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린다 할지라도 모든 것 안에 있는 자신을 결코 버리지 못하면 아무 것도 버리지 못한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리지 못하였다는 뜻이다.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모든 것 안에 자신을 속박시켜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모든 것 안에 자신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신 안에 모든 것을 담아 내는 것이다. 자신이 주체가 되어 모든 것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 안에 자신이 들어 있다면 모든 것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에 지배받는 것이다. 사탄은 광야에서 예수님께 유혹하기를 세상 영광을 다 주겠다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영광을 거절하였다. 이는 예수님께서 세상 모든 것을 버렸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은 예수님 자신 안에 담으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사탄은 세상이 자기 것이라고 말하면서
세상 모든 것 안에 예수님을 속박시켜 예수님을 지배하려고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반대로 자신 안에 세상 모든 것을 포용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셨다.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이 모든 것을 없애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조화가 아닌 파괴는 생명이 아닌 죽음이 되는 것이다. 모든 것 안(위)에 자신이 들어가 앉는 것이 아니다. (탕녀는 온 민족과 온 언어들 에 앉아 있다. 묵시록 참조) 반대로 자신 안(위)에다 모든 것들을 조화롭게 포용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겸손한 섬김의 자세이다. 자신 안(위)에 겸손으로 포용하는 섬김은 만물의 다스림이지 만물의 지배가 아닌 것이다.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세상 영광을 거절하셨다. 세상 영광 안(위)에 앉으면 세상 영광에 도리어 지배당하고 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오로지 아버지께 경배드리며
''당신의 모상''인 사람을 섬기러(사랑하러) 오신 것이다
 
사랑(섬김)으로 만물을 가지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만물의 모든 것들에게 자신을 내어 주는 것(희생)으로 모든 것들이 생명으로 넘치게 하셨다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은 모든 것을 없애는 파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모든 것들에게 사랑으로 내어 주어자기 자신은 버리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세상)에게 영광을 받고자 아니하셨다. 자신에게 참으로 영광을 주시는 분은 오직 하느님 뿐이시다. 자기 자신의 목숨까지도 그렇게 아낌없이 내어 주신 이같은 완전한 ''무소유''의 참된 가난을 십자가에서 이루신 사람은 마침내 부활의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살아 나는 것이다. 빈무덤은 모든 것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무덤 마저도 소유할 필요가 없는 온전히 마침의 가난이 도리어 풍성한 은총으로 돌려 받는다는 것(부활 생명)을 당신의 남겨주신 말씀과 행적으로 주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계신다.
 
* 예수님께서는 결코 우상숭배(사탄의 시험)까지도 포용하라고 가르치시지는 않으셨다
* 오히려 마음에 보이는 악마 (속이는 영)의 존재들은 깨끗하게 물리치셨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