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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런 어린이 하나를'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8-05-20 조회수579 추천수3 반대(0) 신고
<이런 어린이 하나를>(마르 9,30-37) 

-유 광수신부-


    예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제자들 가운데에 세우고 껴안으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들 가운데 하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요, 나를 받아 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파견하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받아들이다"라는 동사를 여러번 사용하셨다. 그것은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또한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강조하시는 것이다.

"받아들인다"는 것이 쉬운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우리의 모든 불행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에서 시작 되었다.

 

 하느님은 아담에게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 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 먹지 말아라. 그것을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는다."(창세3,16-17)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것이 인간의 불행의 시작이었다.

 

 물론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러나 어디에 기준을 두고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뱀은 하와에게 "절대로 죽지 않는다. 그 나무 열매를 따 먹기만 하면 너희의 눈이 밝아져서 하느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이 아시고 그렇게 말하신 것이다."(창3,5)라는 말을 듣고 하느님의 말씀 대신 뱀의 말을 받아들여서 열매를 따 먹었다.

 

 받아들인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디에 기준을 두고 받아들이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아담과 하와처럼 뱀의 말을 듣고 그 말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갈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받아들임의 기준을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라고 못박았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길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하는 문제로 논쟁하였다. 왜 제자들은 예수님이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을 것이다." 라는 심각한 말을 듣고도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자기들의 문제를 갖고 논쟁하였는가?

 

 그 이유는 첫째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분께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씀을 알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데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두 번째는 제자들의 관심이 예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두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의 말씀보다는 뱀의 말을 받아들인것과 같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 하는 것의 기준은 자기 자신에게 이로운가 아니면 해로운가 하는 것이 첫 번째 선택의 기준을 두고 있다. 즉 이것을 받아들이므로서 나에게 이익이 오는가 아니면 손해를 보게 되는가를 보고 받아들이느냐 안 받아들이느냐를 결정한다.

 우리가 실수하지 않고 잘 받아들이려면 무엇보다 말씀을 잘 알아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는 데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할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 데에서 제자들은 자기들의 미래가 불안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대신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높은 감투자리 하나라도 확보해야하겠다는 생각이 그들로 하여금 자리다툼을 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논쟁이나 하고 있는 제자들을 불러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앞에 세우신 다음, 그를 껴안으시며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라고 말씀해주셨다.

 

 왜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는가? 어린이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인간이다. 어린이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는 부모가 사랑해주고 베풀어 주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존재이고 그런 것을 통해서 조금씩 성장해 가는 존재이다.

 

 다시 말해서 어린이는 절대적으로 타자에 의존하는 존재요, 타자의 도움을 통해서만이 성장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제자들이 성장하려면 예수님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그 동안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시면서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시고 보여 주셨다.

 

 그것은 그들이 보고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나가신 제자들도 당신처럼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고 보여주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되려면 무엇보다도 제자들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는 것을 올바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기 방식대로가 아닌 어린이처럼 순진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이 성숙해질 수 있고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가르쳐 줄 수 있다.

 그런데 그 동안 그렇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건만 여전히 제자들은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자기들 끼로 서로 논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들을 가르치시려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에 세우신 다음, 그를 껴안으시며 그들에게 이르신 것이다."

 

 예수님이 "어린이를 껴안으신다"는 것은 제자들도 당신이 어린이를 껴 안으신 것처럼 그렇게 당신이 가르쳐 주시는 것을 온 마음으로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껴 안으라는 것이다. 당신의 말씀을 건성 듣지 말고 마음으로 끌어 안으라는 것이다. 그것이 받아들이는 이의 자세이다.

 

 어린이를 껴안으려면 어린이만큼 낮아져야 한다. 그래서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라고 먼저 말씀하신 것이다. 제자들은 모든 이를 끌어 안는 사람이다. 모든 이를 끌어 안으려면 모든 이들보다 낮아져야 하고 종이 되어야 한다.

 

 당시 사회에서 어린이는 인간으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하였다. 어린이는 순진하다는 특징도 있지만 생각이 미숙한 상태를 나타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대수롭지 않게 취급하는 어린이를 데려다가 사람들 앞에 세우시고 모든 이들이 보라는 듯이 어린이를 안으시는 모습은 사랑의 행위요, 구원의 행위이다.

 

 따라서 어린이를 받아 안으시는 행위는 소외되고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내가 너희들에게 보여 주었듯이 이제부터 너희들도 버림받고 소외된 이들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것이 첫째가 되는 길이고 위대한 사람이 되는 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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