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사해문서 발굴지 쿰란.
작성자유웅열 쪽지 캡슐 작성일2008-05-29 조회수390 추천수3 반대(0) 신고


유대 고난과 수난의 땅에 죽어가는 바다 사해, 최후의 요새 마사다, 사해문서 발굴지 쿰란의 사진입니다. 선택 되었다는 오해(?) 우월하다는 착각(?)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 더불어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는데 오직 자기들 밖에 모르는 처신이. 2천년 박해와 유랑을 스스로 불렀고, 지금도 독기로 발악하며 현상을 유지하고 있는듯 했다. 지금이라도 각성하지 않으면 머지 않아 또 거처 없는 신세가 될 것 같았다. 이는 이로, 칼은 칼로.... 죽은 사해는 강심이 국경인데 담수인 갈릴리 호수는 통째로 차지하고 있다. 아직도 내 생명만 귀하고 남의 생명 귀한 줄 모르는 것 같아 개운치 않았다. 걱정되었다. 메마른 사막에 수맥을 묻어 무성한 농원을 조성했다. 비닐 하우스도 끝이 안보일 정도다 모세혈관 처럼 느려 놓은 인공 급수관에 문제가 생기면 금방 이지경이 된다. 이스라엘 요르단의 과거의 국경은 엘루살렘 도심이었지만 현재의 국경은 사해바다 중간을 가른다. 마샤다요새가 있는 사해 서안에 인접한 산(해발 400m) 케이불카로 연결해 놓은 마샤다 성채 요새에 오르는 케이불카 기지 옛날에는요새로 오르는 길이 Snakepath라는 이 길 밖에 없었단다. 성채 모형(해발 400m 원래 헤롯왕의 별궁이었는데 로마 티로스군 1만5천명에 대항 996명의 유대인이 최후까지 저항하다가 최후 상황에 이르자 로마군의 능욕을 면하기 위해 병사들이 그들의 가족을 살해하고 동료를 처단한 다음 최후의 자결(AD70년)을 했다는 곳. 요새는 하나의 소도시였다. 성채 마을 중 곡식 저장 창고의 폐허 성채에서 내려다 본 로마군 주둔지 난공 불락. 도저히 접근 할 수 없게 되자 로마군은 산을 모아 요새에 도달했다 한다. 로마군을 저지 하던 돌(바위) 포탄 마사다 요새 정상 부위(약 1만 평은 됨직했다) 구약성서 사해사본 필사 장면(필사본 제작 중에 로마군이 침공하여 나중에 계속하기 위해 작업문서를 항아리에 묻었으나(AD 68년) 한 사람도 살아 남은 사람이 없어 68~1947동안 땅 속에 있다가 한 목동이 발견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한다. 이를 쿰란 사본이라고도 한다. 사해 사본 실물 사진 쿰란 구약성서 필사 마을 유적 가장 많은 필사본이 나왔다는 4번 동굴 사해 해수욕장 전경(해발 -395m, 면적 1,020평방km, 동서15km 남북80km) 건너편에 보이는 산은 요르단이다. 사해 머드팩에 심취한 남미 콜롬비아 아가씨들과

Have a great day!
08.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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