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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인생을 이야기한다(2) : 過越(파스카)의 기록
작성자최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8-06-01 조회수566 추천수9 반대(0) 신고

*인생을 이야기한다②

 

       ◎ 過越(파스카)의 기록 - 3통의 편지

 

    이런 말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께만 죽음이 있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이 없다는 말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신문의 부음 란을 정보로서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으로서는 그 사람의 죽음을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으로 실감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죽음을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사랑하는 마음 가운데는 죽어간 사람들이 지금까지 보다 더 강한 생명의 고리로 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 소개하는 3통의 편지는 도쿄대학법학부를 졸업하고 2차례의 프랑스 유학을 거쳐 국책은행에서 줄곧 국제금융분야의 엘리트로 활약하다가 쓰러져 52세를 일기로 얼마전에 세상을 떠난 교우 B씨의 유서이다.

   그는 일찍부터 통증 없이 진행되는 자신의 병을 관리해오다가 자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서는 의료진의 지루한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가족의 동의를 얻어 자연의 질서를 따르는 생을 마친 분이다.

   가족 중에 혼자만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다가 애니어그램(enneagram) 전문가이신 S 교수수녀님의 도움을 받아 임종 며칠 전에 세례를 받았는데 그것은 이승의 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는 장엄한  의식이었다.

   임종직전 지금 기분이 어떠시냐고 묻는 신부님에게 B씨는

   “ 네, 아주 좋습니다.”

   최후의 말이 되고 말았다.

    이 편지는 B씨가 자신의 임종 후 40일이 지나서 개봉하라는 지시로 아들에게 맡겨진 것이다. 그것은 고인이 자기가 전하고 싶은 것을 유족들의 마음이 좀 평정되는 시점에서 차분하게 읽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 B씨의 편지 3통

  (1) 아들에게 주는 편지

  翰樹야, 오랜 친구인 S대학교의과대학의 P교수를 비롯하여 여러 젊은 의사선생님들은 나를 위해서 참으로 많은 노고를 하셨다. 체력의 한계점에 이르기 까지 직장에서 마음껏 일을 할 수 있었음을 감사하고 기뻐한다. 나는 어느 누구로부터도 나의 마지막 때에 관한 정보를 듣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내 몸에서 차츰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손에 잡히듯이 실감하고 있었다. 나는 간장의 약점 때문에 오랫동안 건강에 남달리 조심해 왔다. 그리고 평소에 내 자신이 어떤 엄격한 수도생활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했다.

    때문에 입원할 정도로 상태가 나빠졌을 때는 혼자 자신에게 분노가 치밀기도 했다. 그러다가 병창 앞에서 세탁물을 내걸든 네 어머니가 너무도 쓸쓸한 모습으로 멀리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 너희 남매와 네 어머니를 위해서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치솟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내가 병으로 눕게 된 데 대한 분노를 밖으로 나타내지 않고 또한 그것으로 우울상태에 빠지지 않은 것은 병원의 선생님들과 직장 동료들의 이해와 배려로서 감사하게 여긴다. 그리고 가족들의 뒷받침이 없었던들 여기까지 견뎌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너희 어머니도 너희 남매도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겠느냐? 그럼에도 너희는 내 기분에 맞추노라고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가족 세 사람이 제각기 마음을 써서 내 기분을 밝게 해 주어서 행복하기만 하다.

  翰樹야, 지금 나는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평화롭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없다. 그러나 나는 살고 싶다. 지금부터 사회로 진출하는 너를 지켜주고 싶다. 성인이 되어도 아버지가 필요한 때가 있다. 또 성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해가는 너를 지켜보고 싶다. 이렇게 간절해지기는 처음이구나.

  그러나 이것은 미련이라는 것이지. 사람에게는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다. 얼마 전 내가 농담진담 반으로 “만약 내가 죽는다면”했을 때 너희 세 사람 얼굴이 굳어졌었지. 그러다 곧 진지한 표정이 되더라. 나는 그때의 가족들 표정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너희들은 이미 “왜, 아버지만 이렇게 큰 병을 앓게 되었을까?” 라는 원망에서 벗어난 것 같았다. 물론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하기 어렵겠지만 아버지의 병이라는 현실을 받아드리는 자세를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것, 그리고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에 초점을 맞추어서 온 힘을 다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 너의 자세를 본 나는 더욱 마음 깊이 너를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 너에게는 힘이 있다. 어떤 인생에서도 자기답게 살면 된다. 너는 나의 신뢰에 充足한 내 아들이다.

    병을 앓는 덕택으로 나는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건강했을 때 잘 말하지 않던 마음 깊은 데를 오가는 이야기도 하였다. 너는 내가 병을 앓게 되어 비로소 보게 된 세상의 훌륭한 것들, 그리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남자로서 귀를 기울여 들어주었다.

  체력이 약해짐에 따라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잘 다듬어진 힘이 내 존재의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체험한 것이다.

  나의 이 체험, 그것은 오랜 세월에 걸친 전문지식과 경험이 융합된 높은 수준의 힘뿐만 아니라 모순된 것 같지만 몸이 쇠약해짐에도 불구하고 내안의 모든 기능이 즉 감수성과 감각 그리고 감정, 사고력, 이해력 관찰력 그 밖의 모든 것이 통합되어 전체로서 풍부한 조화를 느끼는 것이다.

 

  나는 죽음을 앞둔 응축된 시간에서 인간과 그 삶에 대하여 새로운 관점과 이해를 얻은 것만 같다. 그러한 나의 내면의 변화를 네가 읽은 것 같아서 만족스럽다. 네가 언젠가 “아버지가 너무도 평화로우시고 밝으셔서 아버지 마음을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많이 기뻤다. 만약 나의 이 평화와 밝음이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전달된다면 앞서 말한 것 같은 새로운 힘이 들어난 게 아니겠는가.

  지금 내게 중요한 것 - 그것은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 없지마는 가족의 사랑이다. 나는 건강을 잃은 대신에 가족의 큰 “사랑”넘치도록 경험 한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나도 가족을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다.

  내가 이렇게 평화로운 마음으로 다가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것은 내가 결코 강해서거나 용기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나는 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확신을 내게 심어준 가족들에게 감사 하고 있다.

  거듭 말한다. 이별을 앞두고 내 마음을 가득히 채우고 있는 것은 아버지가 내 목숨보다 더 너희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고 내가 너희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너희들도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성서를 읽다가 다시금 깨닫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이별의 말씀을 나누실 때 마음을 지금 내가 맛보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내 머리맡에는 그 예수님의 말씀을 적은 카드가 있다.

    “파스카축제가 시작되기 전이었다. 예수께서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  께로 건너가실 때가 된 것을 아시고 그분께서 이 세상에 있을 제자들을 사랑하시고 한없는 사랑을 나타내셨다”(성프랑치스코회성서연구소역. 요한13:1)

     송구스럽기 비길 데가 없지마는 “예수께서는” 자리에 “내 이름” 을, 그리고 “제자들” 자리에 “ 翰樹와 尙美 그리고 네 어머니의 이름” 을 넣어 보면 내가 얼마나 너희들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염치없이 자주 “천국에 때를 써서라도 들어갈것이다”고 말했었는데 이제 간신히 성공할 것만 같구나. 네 어머니와 너희 남매의 기도의 보람이다. 죽음을 앞두고 끝까지 제자들을 사랑하신 그리스도께서 그때와 같은 사랑으로 나를 감싸주고 계심을 굳게 믿는다. 그리고 너희들과 나는 그분의 사랑 가운데서 묶여져 있다.

  어머니와 상미를 부탁한다.

  翰樹야, 나는 마음 깊은데서 너를 지극히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2) 딸에게 주는 편지

  사랑하는 딸 尙美에게

   입원병실 침대에 누워서 천정을 바라보는 날이 계속되고 있다. 하얀 천정은 스크린이 되어 내 가슴에 오가는 온갖 생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요즘은 천정 벽에 떠오르는 현란한 무늬로 해서 기분이 좋은 날이 많아졌다. 네가 굳어가는 내 발을 열심히 안마해주는 바람에 흔들리는 내 몸의 율동으로 이 천정의 무늬와 색상이 변하는 것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생겼구나.

   尙美가 지난여름 급하게 N대학교의과대학의 영국인 여성교수 지도로 진행되는 마사지 연수회에 참가한 것을 알고 아버지는 퍽 놀랬구나. 아버지는 연수회를 다녀온 뒤로 尙美가 놀랍도록 달라진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안도감을 느꼈다.

    입원한 뒤로 나는 내 몸을 전적으로 너에게 맡기고 있다. 너는 내 몸에서 병을 쫒아 내려고 굳어지는 다리와 발을 시원하게 안마해 주었다. 네가 마사지를 시작하면 난 병자의 고통을 깡그리 잊고 편한 기분이 되어 평안한 잠을 자기도 한다. 나에게 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체력이 차츰 없어져 가고 있다. 유감스럽구나.

    나는 네가 힘들거나 어려운 일에 당면해서 눈물을 헐릴 때 옆에서 힘이 되어 주지 못할지도 모른다. 멀지 않아 그런 날이 올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산란해진다.

  일어나고 싶다. 다시 한 번 건강한 삶을 살고 싶다. 그러나 병으로 쓰러진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운명을 받아드려야 하는 것뿐이다.

    이 기회에 너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앞으로 너는 아버지라고 하는 열차에서 내려서 혼자서 걷게 될 것이다. 그때 너는 너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소중히 하기 바란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따스하고 깊은 애정을 지니고 산다면 너는 자기 자신을 최상의 친구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너는 참다운 의미에서 풍요로운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사람에 대한 마음가짐이다. 너는 열심히 내 발을 안마하는 가운데 아버지와 한 마음이 되고 감사와 감동을 나누어가지게 된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은 어떤 언어보다도 뜨겁게 전달되어온다. 우리들은 깊은데서 平和로 가득한 일체감을 체험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사람과 사람의 끊을 수 없는 유대이다.

    尙美야, 너는 우리가 함께 해온 시간가운데서 사람을 향하는 마음이 순수하면 순수할수록 사람과의 관계가 참답게 깊어진다는 것을 體得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젊었을 때에 “사랑하는 힘”을 이만큼으로 크게 몸에 익힌 딸을 둔 것을 아버지는 무엇보다도 자랑스럽게 여긴다. 尙美라고 하는 딸을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한없이 감사하게 기억한다.

     尙美야, 너와 나누고 싶은 시간과 말은 끝이 없다. 너는 나에게 둘도 없는 소중한 딸이다. 네가 믿는 바를 따라서 자신을 가지고 살아다오. 너는 그것이 가능하고 능력이 주어졌다고 믿는다.

  나는 너를 믿는다. 그리고 목숨도 아깝지 않을 만큼 너를 사랑하고 있다.

  ③ 아내에게 주는 편지

   무엇이라고 불러야 좋으리까?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되는구려. 아, 생각났어요. “사랑하는 사람아” 이지요.

  사랑하는 사람아,

  나는 당신과 생애를 함께 해 온 것을 마음깊이 감사하고 비길 바 없는 행운으로 여기고 있어요. 당신과 나는 하늘이 주신 생명의 공동체였습니다. 내가 병이 든 후 특별히 강하게 느낀 것은 당신은 신비한 힘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건강해서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는 그런 것을 느낄 여유도 없었지만 이렇게 병실에서 당신과 조용하게 마주하고 있으니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내 자신을 처음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이런 느낌이 가득해오니 내 안에 평소와 다른 무언가가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내 안의 참다운 요소가 일고 조화를 가지게 되는구려.

  내 안에 따스한 사랑과 광명의 감정이 퍼지고 모든 것에 순수한 눈을 보낼 수 가 있을 것 같아요. 이 느낌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인간의 순수성”이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럴 때 나는 참으로 당신으로부터 지극히 사랑받고 살았음을 절실히 느낍니다.

“아니라요. 나는 제멋대로의 아내였어요”

“그렇게 좋은 아내가 아니었어요”

라고 머리를 흔들면서 말하는 당신 모습을 보는 것만 같군요.

    우리는 싸우기도 했고 다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눈앞에 두고 나는 평생 최상의 伴侶를 누렸고 그 반려로 해서 행복하고 또 행복한 생애를 살았다고 확신합니다.

  게다가 우리들은 훌륭한 아들딸들을 받았습니다. 나는 가족을 마음 깊이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겨왔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아, 지금 있는 이대로” 이것이 나의 메시지.

  당신을 소개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고 다시 한 번 당신을 불러봅니다.

 “사랑하는 당신아”

  또 다시 맞대고 볼 그날까지(1코린토13:12)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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