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은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을 예수께 보내 슬그머니 예수님을 칭찬하는 척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예수님은 단번에 그들의 질문이 함정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신다.
그런데 이들이 한 질문의 모양새가 언젠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질문을 연상케 한다. 그래서 성경을 찾아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마르코복음 3장 4절의 말씀과 그대로 닮아 있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시면서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에게 이렇게 질문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때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은 찍소리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은 그때 예수께 당한 수모를 오늘 똑같은 방법으로 갚아주기 위해 이런 질문을 던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예수께서 쓰신 질문 형식이 그들의 의도와 질문 내용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다. 이런 질문 형식은 옳고 그름에 대한 절대적 기준을 판단할 때만 쓸 수 있는 것이다. 마치 빛과 어둠처럼 극명하게 갈리는 진리, 중간이라는 것은 없는 절대 진리를 말할 때 써야 하는 형식인 것이다. 그런데 바리사이와 헤로데 당원들은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문제를 그 형식에 썼다.
세금 문제는 진리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였다. 게다가 그 질문의 의도는 어떻게 해서든 예수님을 옭아매기 위한 음흉한 저의가 깔린 것이었다. 겉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속은 썩은 냄새가 나는 위선적인 질문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진리와 위선의 차이가 있다. 진리는 그 자체로 분명하게 옳고 그름을 가늠하는 잣대이지만, 위선은 겉만 그럴듯하게 보일 뿐 실제로는 사심으로 가득 차 있다.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의 어리석은 질문을 보면서 나 자신 또한 그런 모습을 갖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본다. 속으로는 다른 사람을 눌러 이기기 위해, 또는 복수하기 위한 목적이면서 겉으로는 마치 진리를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위선의 모습 말이다.
조용상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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