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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기도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6-18 조회수587 추천수6 반대(0) 신고

'생명의 은총'은 인간의 수준을 초월한 지성과 '사랑의 은혜'로써 '인간의 본성'을 완성시킨다

은총이란 무엇인가 이는 인간이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다

은총에 의해 인간은 무한한 '몰아의 사랑'에 참여 할 수 있다

광선이 수정에 투사되면 수정은 새로운 특질을 가지게 된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인간 영혼에 투영되면 그 인간은 새로와 진다

자연 수준에 머물러 있는 한, 어떤 의미로는 이기적일 수 밖에 없는 자연적 선행과 사랑의 능력은

'하느님의 사랑'이 그 안에서 빛날 때 변화한다

<토머스 머턴의 '칠층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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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인간 자체의 힘은 그같은 힘에 자신이 의존하면 할수록 현실에 자유롭지 못하고 도리어 그 힘으로 무력해 진다. 참된 자유는 '하느님의 모상'으로서의 자신에게 향하는 인간적인 힘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모상'으로서의 하느님께 향하는 하느님 은총의 힘을 사용하는데서 진정함이 나온다.

매사를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모든 현실들을 감사하게 여기며 (기도하며) 자신의 인간적인 힘을 하느님이신 그분께 맡기는 겸손한 영혼만이 세상의 여러 일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자기의 힘에 의존한 사람은 자기가 원하고 바라는 사랑과 기쁨 그리고 온유와 평화도 얻을 수 없다.

이것들은 오로지 제 영혼이 참으로 하느님께 향할 때에 맺을 수 있는 열매이다. '은총의 힘'은 '신앙의 힘'보다도 앞서기 때문이다. 은총은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고 하느님으로부터 발산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연약한 인간의 본성을 지니고 있다. 세상 안에서 힘겨운 봉헌생활(봉사)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어려운 현실적인 상황을 접하게 됨으로써 자기 영혼이 상처를 입기도 한다. 이를 인내하고 극복하지 못할 경우에는 거기에서 벗어나 조용한 곳에 머무르며 기도하기만을 영혼이 바라며 떠나기도 한다.

활동하는 영혼들은 쉽게 상처를 입는다. 자신의 연약함에 용기를 잃고 자신 스스로에게서 더 깊은 상처를 받는 경우가 종종 많기 때문인데 이는 자기 '신앙의 힘'으로 모든 것을 극기하고자 자신의 의지와 노력을 신앙의 기초가 되는 신심활동에 투자한 이유이다. 그는 '하느님의 모상'으로써 내재된 '자신의 힘'을 믿는 것이다.

잘못된 투자가 아니라 올바른 마음이 아닌 것이다. 봉헌은 행동 이전에 마음이 먼저 앞서야 한다. 십자가의 길을 행동으로 걷기 이전에 먼저 게세마니 동산에서 겪게 되는 마음의 기도가 앞선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고난의 잔'을 세례로 받은 영혼만이 육신의 행동으로 고통의 십자가 길을 초연하게 걸을 수 있는 것이다.

나약한 인간의 기도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는 천상과 지상의 연결 통로이다. 신앙이란 바로 기도의 삶이 되어야 한다. 삶이 기도이어야 한다. 활동은 기도가 되고 기도는 활동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생명의 기도는 생명의 원천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께 드리는 살아있는 기도이어야 한다. 게세마니의 기도가 그렇다.

마음의 고통을 겪지 않고서는 누구라도 자기 육신의 고난을 극복할 수 없다. 마음의 준비가 없이 행동을 앞세운다면 제자들 처럼 모두 그리스도에게서 떠나 달아나게 될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까닭에 함께 기도하기를 원하셨지만 제자들은 영혼의 잠을 청하고 말았다. 육신(행동)의 약함은 영혼(마음)의 약함이다. 영혼의 잠에서 깨어나서야 했다.

온갖 신심활동이 화려하다고 할지라도 '영혼의 잠'에서 깨어있슴은 [ 말씀이 행위를 드러내고 행위가 말씀을 밝히고 있는 것 ]이어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성경)이 행위로 드러나고 행위는 예수님의 말씀을 밝혀야 하는 것이다. 말씀과 행동이 서로 떨어져 있으면 자기 안에 행위가 무엇인지 드러나지 않고 말씀이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아 영혼은 깨어있지 못하고 잠들게 되는 것이다.

기도는 '영혼의 잠'을 깨우는 것이다. 사람이 아닌 하느님에게서 발산되시는 '은총의 힘'을 받아 들이게 된다. '영혼의 문'을 두드리시는 '그리스도의 영'은 그 문을 열어주는 이에게 들어 오시기 마련이다. '자신의 힘'에 오로지 의지하고 있는 영혼에게는 그가 신심활동(행동)을 중요시 여기겠지만 영혼의 겸손한 마음보다 못한다.

'영혼의 겸손'으로 은총이 육신에 앞서지 못하기 때문에 하느님께 향하는 진실한 기도가 없게 된다. '자신의 힘'에 매여있다가 거기에서 마침내 무력해 지고 마는 것이다. 비천한 자신에게 어찌 거룩하신 분께서 자기 몸 안에 거하실 수 있겠느냐 자신의 지성에 의존하는 악의 유혹에 빠져서 그리스도께 문을 열지 못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의 살과 피를 사람들에게 넣어 주셨지만(성체성사) 이 '은총의 힘'을 방해하는 악은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 안에 새로운 하느님의 생명으로써 머무르지 못하도록 온갖 자기 방어 체계(지식)을 구축시키기도 한다. 악한 지식을 떨쳐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성경)을 믿고 그분의 말씀에 온전히 의지하는 겸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말씀(그리스도)이 영혼의 마음 안에 새겨질 때에 '그리스도의 영'은 살아있고 '은총의 힘'은 활동한다. 말씀이 새겨진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자기(문) 안에 들어오셨기 때문이다. 영혼은 잠에서 깨어나고 육신은 고통 속에서도 살아 있는다. 시련과 고난에서 기도가 끊임없이 흘러 넘치며 그 기도는 감사드리는 기도가 된다.

모든 현실의 일에 감사드리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하느님)께 청원하는 [ 기도의 삶 (삶의 기도) ]에서 영혼은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사랑'으로 새롭게 변화해 간다. 그 영혼의 차원은 이미 세상의 차원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차원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런 영혼을 이해할 수 없고 볼 수도 없다. 

오직 '성체가 된 영혼' (영혼은 육신의 형상)만이 아버지의 뜻을 바라보며(기도하며) '그리스도적인 고난'을 자기 안에 채우며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한다. 그리하여 생명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기도'를 이루게 되어 자신의 힘보다는 은총의 힘으로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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