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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월 22일 야곱의 우물- 마태 18, 19ㄴ-22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8-06-22 조회수476 추천수3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마태 18,19ㄴ-22)
 
 
 
 
사람들은 때로 변덕스럽고 비논리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그래도 그들을 용서하라.
네가 친절을 베풀면 이기적이고 숨은 의도가 있다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친절을 베풀라.
네가 정직하고 솔직하면 사람들은 너를 속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라.
네가 오랫동안 이룩한 것을 누군가 하룻밤에 무너뜨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무언가 이룩하라.
네가 평화와 행복을 누리면 그들은 질투할지 모른다.
그래도 행복하라.
네가 오늘 행한 선을 사람들은 내일 잊어버릴 것이다.
그래도 선을 행하라.
네가 갖고 있는 최상의 것을 세상에 내줘도 부족하다 할지 모른다.
그래도 네가 갖고 있는 최상의 것을 세상에 주어라.
- 켄트 M. 키스, <그럼에도 불구하고>(장영희, 「생일」 재인용)

 
마태오복음 18장은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생활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넘어야 할 현실 문제를 잘 아십니다. 혼자서 사는 것도 좋지 않고, 함께 사는 것도 수월치 않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 공동체도 다를 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 역시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평범한 사람들의 집단입니다. 사람 때문에 절망했다가 사람 때문에 살맛이 나는 것이 인생인가 봅니다. 공동체 안에는 인간의 허약함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대결과 갈등과 모함이 늘 공존합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20절) 마태오 복음사가가 소망하는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참다운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이루는 길은 하느님한테서 받은 자비를 형제자매들과도 나눌 때 가능해집니다(루카 15장 참조). 하느님의 자비를 갚는 방법은 용서하는 일입니다. 특히 공동체가 존재하고 지속되기 위해서는 용서가 절실합니다. 공동체를 파괴하는 이기심과 배치됩니다. 용서는 사랑의 이면입니다. 죄를 저지른 동료를 구하고자 하는 공동체 안에 예수님은 함께하실 것입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21절) 유다인들은 보통 네 번까지 용서하라고 가르칩니다.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21절) 베드로는 이보다 훨씬 관대합니다. 일곱 번은 여러 번을 상징합니다. 훨씬 더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유다인이나 베드로는 한계를 정해 놓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전적인 자비에는 전혀 미치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인간을 죽음과 노예살이에서 이끌어 내어 자유와 생명으로 인도하십니다.
 
“카인을 해친 자가 일곱 갑절로 앙갚음을 받는다면 라멕을 해친 자는 일흔일곱 갑절로 앙갚음을 받는다.”(창세 4,24) 이처럼 용서는 복수심에 비례합니다. 복수하려는 욕구에 끝이 없듯이 용서에도 끝이 없습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22절) 용서만이 공동체를 구하고 공동체를 유지시킵니다.
 
용서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 양심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콜로 3,12-­13)
교회는 본질적으로 긴장과 갈등이 공존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더욱 자비가 공동체의 인간관계에서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죄를 용서하는 전권은 기도에 뿌리를 내리고 있을 때 올바로 이루어집니다.
 
 
묶는 것과 푸는 것(18절)은 공동체의 기도로 가능합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19절) ‘마음을 모으는 것’은 공동체를 회복하는 데 중요한 수단입니다. 구성원들 사이에 일치를 유도합니다. 마음을 모아 형제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아버지께 청하는 것이 매고 푸는 이가 할 일입니다.
 
공동체는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드러나시는 장입니다. 그래서 구성원들은 인간관계에서 예수님의 영을 실현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성공하려면 끝없는 용서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용서는 숫자와 상관없습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잃어버린 양 한 마리까지도 찾아야 하고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도 용서해야 하는 공동체입니다.

 
서두에서 운을 뗀 켄트 M. 키스의 시에서처럼, 아무리 잘 살아보려고 애를 써도 늘 방해와 유혹이 따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라림과 증오를 이길 힘을 주님께서 주십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길은 험난합니다. 갈 길도 까마득히 멉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하던 대로 묵묵히 기도하고 용서합니다. 나의 사소한 성실함이 공동체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강지숙(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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