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 차이 와타나람(Wat Chai Wattanaram)
지난 주에 태국을 다년왔습니다. 불교 유적지인 아유타야를 들렸지요.
아유타야에서 불교 유적중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사원이 이 왓 차이 와타나람인데
“왓 차이 와타나람(Wat Chai Wattanaram)”은 아유타야 왕국의 24대 왕인 ‘쁘라삿 통’(Prasart Thong: 재위 1630-1655)왕의 즉위 년도인 1630년도에 만들어진 불교 사찰이다. 이 사원은 아유타야의 도성 바깥쪽에 위치하는 사원으로서 아유타야의 서남쪽을 감싸고 흐르는 짜오프라야 강의 강변에 위치합니다.
이 사원을 지은 쁘라삿통왕은 당초 정식 후계자가 아니었으며,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짜오프라야 시 수리야웡’이라는 이름으로 막강한 실권을 가지고 있으면서, 선대 두 왕을 제거하고 아유타야의 24대 왕위에 올라 27대왕 나라이 왕까지 이어지는 쁘라삿통왕조를 수립한 인물입니다. 권력찬탈과정에서 수많은 목숨이 희생되었고, 취약한 정통성으로 인해 그의 재위기간 중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난 바 있습니다.
정 중앙에 위치한 옥수수 모양의 쁘랑탑의 높이는 35미터로서 초기 아유타야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안내 책자에는 왕 쁘라삿 통이 그의 모친을 위하여 지었다고 했더군요.
아유타야 관광의 일미로 안내원이 반드시 안내하는 곳인데 광징히 성스럽게 여기고 있는 곳입니다.
이 곳은 '왓 프라 마하탓'으로 아유타야 최대의 사원이 있는 자리에 있습니다. 이 곳은 지금으로부터 약 630여 년 전인 1374년에 보롬마라차 1세(재위1370-1388)에 의해 아유타야 도성의 중심부에 창건된 사원으로서 그 중앙에는 무려 50미터 높이의 쁘랑 대탑이 위치하여 아유타야의 랜드마크 역할을 했던 사원이었습니다. 이른 새벽 명상을 하던 왕이 동남쪽에서 빛을 발하는 부처님의 유물을 발견하였으며, 신성한 그 자리에 사원을 짓게 된 것이 아유타야 ‘왓마하탓’의 창건 유래입니다.
왓 라차부라나(Wat Rachaburana)
앞에 소개한 ‘왓 마하탓’의 북쪽 건너 편에 “왓 라차부라나(Wat Rachaburana)”라고 하는 사원이 있습니다. 이 사원의 중심인 쁘랑탑은 아마도 비슷한 종류의 아유타야 쁘랑탑 중 가장 아름다운 형태의 하나입니다. 600년에 가까운 세월의 무게와 여러 차례에 걸친 버마군의 침략에도 불구하고 거의 완벽한 형태를 간직하고 있는 쁘랑탑이지요. 중앙의 쁘랑 주탑을 중심으로 기단부 네 코너에 제디탑이 서있는 모습은 크메르의 영향을 흡수한 초기 아유타야 탑의 전형적인 모습을 우아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580여 년 전인 1424년 아유타야의 7대 왕 인드라라차 왕이 승하했습니다. 왕의 서거와 동시에 왕의 장남(‘차오 아이 프라야’. 수판부리 통치 왕자)과 차남(‘차오 이 프라야’. 산부리 통치 왕자) 사이에 왕권을 둘러싼 대결이 벌어졌습니다. 두 사람은 현재의 사원이 위치한 바로 그 자리에서 각자의 코끼리를 타고 일대일로 결투를 벌이게 됬지요. 두 사람의 창 끝이 동시에 서로를 관통했는지 결투의 결과는 모두의 죽음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장남과 차남이 동시에 서로를 죽인 것입니다.
강력한 후계자였던 첫째 왕자와 둘째 왕자가 동시에 사라지고 나자 왕권은 셋째 왕자에게 이어졌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차오삼프라야’라고 칭하던 ‘보롬라차 2세’(재위 1424-1448)로 아유타야 왕국의 제 8대 왕입니다. 1438년에 수코타이를 아유타야에 완전히 합병한 인물이고, 아유타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중 하나인 “보롬트라일로카낫”왕의 아버지입니다.
형들의 죽음으로 왕위를 승계하게 된 ‘차오삼프라야(보롬라차 2세)는 그의 두 형들이 서로를 죽인 그 자리에서 그의 부친과 함께 두 형들의 장례식(화장)을 거행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사원을 지었으니 바로 ‘왓 라차부라나’입니다. 먼저 두 개의 제디탑을 세워 그들의 유골을 보관케 하였다고 하며, 그 이후 중앙의 쁘랑탑과 비한(Viharn), 봇(Bot)등의 전각을 지어 오늘날 우리가 보는 “왓라차부라나”가 완성된 것입니다.
왓 프라시 산펫(Wat Phra Sri Sanphet)
15세기 말 왕궁 부지 안에 세워진 왓 프라시산펫은 아유타야 사원 건축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1499년에 지은 긴 불당에는 높이 16m의 황금불상이 안치되어 있었으나 18세기에 침입한 미얀마군이 약탈해 가고 절은 불태워 현재 남아있는 것은 방콕 왕조 초기에 재건된 것입니다. 사원 안쪽의 넓은 터는 원래 아유타왕조의 왕궁이 있었는데 이것 역시 미얀마의 침략으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동·서·중앙에 있는 3기의 스투파는 역대 군주의 유골을 안치하기 위한 납골당으로서 1492년과 1532년에 세워졌습니다. 1991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습니다.
1767년에 세원진 태국 최초의 교회(성당) St Joseph's Church 입니다. 강 서쪽에 위치해 있더군요.
아유타야의 정식명칭은 프라나콘시아유타야(Phra Nakhon Si Ayutthaya)입니다. 방콕 북쪽 64km 지점, 차오프라야강 하류에 전개된 삼각주 위에 발달해 있습니다. 타이족의 남하에 따라 1350년 건설되어 약 400년 동안 아유타야왕조의 역대 수도로 번영하다가 1767년 미얀마의 침입으로 파괴되었습니다.
시가지에는 많은 운하망이 종횡으로 통하여 수상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고. 부근 일대는 벼농사 중심지대이며 제재·담배제조·죽세공 등도 활발합니다. 방콕과는 철도와 고속도로로 연결되며 쌀의 거래가 활발며. 강대한 제국의 정치·문화 중심지로서 전성기에는 왕궁 3곳, 사원 375개, 요새 29개, 대문이 94개에 이르렀으나, 미얀마군의 침입과 18세기에 방콕으로 수도가 옮겨지면서 일부 유적만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