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장애인들과 태안반도에 다녀왔다. ‘우리는 환경지킴이’라는 이름 아래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 춘천에서 전북까지 새벽을 가르며 먼 길을 오고 갔다. 아름다운 해변이 검게 그을린 것을 보면서 둔탁한 짐을 얹어놓은 것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선거철이라 봉사자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는 주민의 말을 들으며 청년 봉사자를 따라 해변으로 나갔다.
참 아름다운 해변, 수천의 사람들이 여름을 즐긴다는 태안반도가 이제는 생계를 걱정하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곳으로 전락했다. 우리가 만들어 간 EM액을 바다에 붓고 돌을 닦으면서 너무나 미약한 우리 노력이 얼마나 보탬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 장애인 가족은 자신들이 돌을 닦았으니 깨끗해질 거라며 다음에 이곳으로 캠프를 오자고 했다.
세상 곳곳에는 하느님의 신비가 감추어져 있다. 우주에 담긴 하느님의 마음, 풀꽃 속에 담긴 그분의 섬세한 손길처럼, 기름을 먹은 바위에서 푸른 이끼가 다시 돋아나는 것처럼 하느님의 숨결은 이 세상에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무심히 잊고 지낸다.
소명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나를 지으신 하느님의 사랑이 가득 찬 이 세상을 그분의 뜻대로 되도록 함께하는 것, 작은 풀꽃에 담긴 섬세한 하느님의 사랑을 아는 것, 인간이 일그러뜨린 세상을 미력하나마 다시 복원하는 데 힘을 다하는 것, 삶을 포기하려는 사람을 격려하는 것,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외칠 수 있는 것….
이어령 씨의 수필을 보면 세상에는 인망·법망·천망이라는 세 가지의 그물이 있다고 한다. 사람의 그물도 법의 그물도 피할 수 있으나 천망, 곧 하늘의 그물은 빠져나갈 수 없다고 한다. 오늘 복음 말씀처럼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어둠이 빛을 가릴 수 없듯이 진실은 언제나 밝혀지기 마련이다.
지금 세상이 어둠 아래 있다고 해도 우리는 하느님의 섬세한 보살핌 아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소명은 ‘생명을 살리는’ 부르심이 아닌가? 죽어가는 사람들, 생명을 살리라는 부르심. 우리는 서로 살리는 일을 해야 한다.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이 우리의 소명이 아닐까?
기정희 수녀(춘천 밀알재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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