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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7월 25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8-07-25 조회수953 추천수12 반대(0) 신고
 

7월 25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마태오 20장 20-28절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교회 내 권위에 대한 올바른 인식>


   규모가 꽤 큰 단체 하나가 파행을 거듭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파행의 가장 큰 원인은 구성원간의 분열이었습니다. 주도권 획득을 위해 벌이는 두 세력 간의 다툼은 그야말로 이전투구(泥田鬪狗)였습니다. 진흙탕 속에서 개 두 마리가 서로 물어뜯으며 뒹구는 모습과 어찌 그리 흡사하던 지요.


   이러한 분열과 다툼의 한 가운데 그 단체의 최고책임자의 그릇된 처신이 있더군요. 그는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이었습니다. 또한 독선적이었습니다.


   큰 단체의 최고 책임자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합니까?


   우선 큰 어른으로서 말을 좀 아껴야 좋지요. 문제가 생길 때 이 사람 말, 저 사람 말에 솔깃하지 말고, 한 걸음 물러나서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서로 화해할 수 있도록 중재도 하고, 격려도 하고, 그래야 정상이지요. 그런데 이분은 그게 잘 안됐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조직이 크다보니 자기 밑에 여러 중견간부들이 있는데, 그들도 자신들의 몫을 할 수 있도록, 상호보조성의 원리에 따라 권한에 대한 분배도 이루어졌어야 했는데, 그게 잘 안 됐습니다.


   다독거리고, 격려하고, 덕담이나 좀 해주면서 큰 물줄기만 잡아주면 되는데, 쫌생이처럼 이것 저 것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려니, 아랫사람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권위’란 글자 앞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어떤 생각입니까? 일단 거부감, 부담감, 껄끄러움 등등 부정적 느낌이겠지요?


   아마 우리가 너무나 오랜 세월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많은 고초를 겪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실 ‘권위주의’와 ‘권위’는 엄연히 다른 의미입니다.


   권위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전적 의미로는 이렇습니다.


   ‘어떤 한 사회적 존재가 다른 타자에 비해 우월적 가치를 소유한 자임이 사회적으로 승인되어 타자의 행위를 좌우할 수 있는 능력.’


   이러한 권위가 교회 안으로 들어오면 좀 더 특별한 색채를 지니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 행사되는 권위의 원천은 한 개인이나 집단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 통용되는 권위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께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지니고 있는 크나큰 문제 가운데 하나가 권위에 대한 그릇된 인식입니다. 그로 인해 교회 구성원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하고, 구성원들이 받는 상처 역시 심각합니다. 권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폐해입니다.


   권위에 대한 타당하고 올바른 인식,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권위에 대한 적절한 인식은 다른 무엇에 앞서 성경으로부터 구해져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참 목자로서 교회 공동체의 중심이 됩니다. 그분만이 유일하게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며 스스로를 전권을 지닌 존재로 선언할 수 있습니다. 그분만이 교회 공동체의 중심에 서계시며 그 누구도 그의 독보적인 존재론적 위상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권위는 공동체의 일치, 진실 된 가르침과 전통의 보존, 교회 사명의 완수를 위해서만 행사되어야 합니다. 이 한계를 벗어나 무한하게 확장된 권위는 교회 각 구성원의 고유성과 자율성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공동체, 교회내의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손상시킬 것입니다.


   사목자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수제자 베드로에게 맡긴 양들은 예수님의 양들이었지 베드로의 양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너의 양들’을 돌보라고 하지 않으시고 ‘나의 양들’을 돌보라고 하셨습니다.


   양들을 위한 목자는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따라서 그로부터 권위를 받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동등한 존재론적 위상을 공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세상에 행사하시는 구원활동에 대한 직무를 위임받은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권위는 다른 목적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기 위한 수단임을 명백히 하고 계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290번 / 복음을 전한 사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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