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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7월 25일 야곱의 우물- 마태 20, 20-28 묵상/ 낮은 곳에서 섬기기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8-07-25 조회수512 추천수4 반대(0) 신고
낮은 곳에서 섬기기

(필자가 묵상한 구절을 중심으로 싣습니다.)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중략)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마태 20,20-­28)
 
 
 
 
◆오늘 예수님 말씀이 전에 없이 준엄합니다. 당신을 따르려면 그분이 겪으실 처참한 죽음도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백성 위에 군림하는 통치자, 세도를 부리는 고관대작들을 질타하십니다. 그리고 목숨을 바치는 것으로 너희를 섬길 테니 너희는 어떻게 하는 게 옳겠느냐고 태산 같은 요구를 하십니다. 달리 읽으면, 온 백성을 발 아래 둔 통치자와 고관대작들은 그 백성의 심사를 편하게 하기에 노심초사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꼭대기에 올려주면 섬기겠다는 사람들한테는 참 따르기 어려운 명령입니다.
 
언젠가 동료들과 겨울 산행을 하다가 폭설을 만나 강원도 어느 절에서 사흘을 갇혀 지낸 적이 있습니다. 밖으로 통하는 길이 끊긴 절은 적막했습니다. 연세 많으신 주지 스님과 서른쯤 되어 보이는 젊은 스님은 거의 불청객에 가까운 우리 일행을 지극정성으로 돌봐주셨습니다. 먹이고 재우는 건 물론이고, 빨래하고 목욕할 물을 끓이는 것도 모자라 저녁마다 강정까지 한 소쿠리씩 주셨습니다.
 
셋째 날 오후에 보온병 하나 가득 꿀차를 넣어주고 돌아서시는 주지 스님께 일행 중 하나가 농담 삼아 여쭈었습니다. “아니, 주지 스님, 이러다 이 절 파산하겠습니다. 저희를 너무 모시는 것 아닌지요?” 흘낏 눈길을 주시는가 싶은데 퉁명스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자네들이나 개나.” 아니, 이 무슨 말씀? 혹 대단한 선문답이라도 나누어 주신 것인가 싶어 흥미진진해진 우리는 젊은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여기 강아지가 밥을 안 먹으면 노스님은 그놈을 방에 들여놓고 밥을 씹어 먹이시거든요. 생명 있는 모든 것을 극진히 섬기는 그분한테는 여러분이나 강아지나 똑같은 거겠지요.” 머리가 맑아지는 통쾌한 대답이었습니다.
 
목숨도 걸어야 하고, 체면 안 서게 보통 사람들의 땅으로 내려서서 그들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하니 예수님 말씀 실천하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성경은 온통 그런 역설적인 요구로 가득합니다. 어린아이 같아야 천국이 허락되고, 가난하고 병든 이가 오히려 귀하게 된다고 하십니다. 섬기는 사람이 섬김을 받게 되고, 종으로 일하는 사람이 첫째가 된다고 하십니다. 당연하신 말씀 같지만 세속의 상식에서는 한참 먼 말씀이라 어렵습니다.
 
아침부터 일한 사람과 낮에 온 사람과 해질 무렵에 느지막이 출근한 사람이 모두 같은 임금을 받는다는 예수님 식 셈법 다음으로 어려운 말씀 아닌가요. 그래서 무조건 섬겨보겠다고 맘먹은 적도 있지만, 제게는 실천이 어려운 일입니다. 사랑이 부족해서 그럴 것입니다. 강아지를 불쌍히 여겨 극진히 모시다가 언젠가는 붓다의 경지에 오르셨을 스님이 부러운 시간입니다.
여상훈(도서출판 시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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