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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7월 27일 야곱의 우물- 마태 13, 44-52 /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8-07-27 조회수474 추천수7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또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또 하늘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올려 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버렸다.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불구덩이에 던져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제자들이 “예!”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마태 13,44-­52)
 
 
 
 
우리의 현실은 하늘나라의 기대와 모순되어 있어 의심과 어려움이 따릅니다.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이 누구한테나 기쁜 소식으로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처음부터 예수님이 승리의 행진을 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창조 때부터 세상이 깨끗한 상태로 만들어졌으면 지금 우리가 이런 갈등과 모순 속에 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왜 기쁜 소식은 알아듣기도 어렵고 알아보기조차 어려울까요? 뭐가 이렇게 복잡할까요? 설상가상으로 하느님 나라를 소개하는 비유 말씀도 ‘감추어진 것’에 속합니다. 알아듣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의 효력은 온전히 우리의 선택과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한 농부가 남의 땅을 갈다가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합니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44ㄴ절) 다른 이의 밭을 간 이 농부는 소작농이거나 날품팔이꾼일 것입니다. 그는 보물을 숨겨두는 치밀함까지 갖추었습니다. 그동안의 바람과 계획은 다 팽개치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그 밭을 살 정도로 용감합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도 아깝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이 납니다. 귀한 것이기에 더욱 정당한 방법으로 보물을 차지합니다.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도 매한가지입니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46절) 그 시절에 천연 진주는 매우 값진 보석이었습니다. 이 상인은 오랫동안 값진 진주를 찾아 떠돌았습니다. 좋은 진주만을 취급하는 전문가이니 금방 이 진주의 값어치를 알아보았을 겁니다. 애타게 찾던 것이기에 이때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밭에 묻힌 보물이나 희귀한 진주는 쉽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런데 농부와 상인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의 가치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최고의 가치를 발견했을 때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 가치를 소유하고 싶은 열망에 다른 모든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앞뒤 안 가리고 가진 것을 다 처분합니다.
짝을 이루는 이 두 비유는 하늘나라의 가치와 그 가치를 발견했을 때의 무한한 기쁨, 그리고 그에 따르는 노력과 대가를 잘 보여줍니다. 보물이 어느 날 갑자기 거저 굴러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끊임없이 하늘나라의 가치를 갈망해야 합니다. 하늘나라를 발견한 사람은 자신이 누리던 안정과 평화와 소유를 포기하고 수고와 노력을 다하여 기쁘게 하느님 나라에 온전히 들어갑니다.

 
마지막 비유의 배경은 갈릴래아 호수입니다. “또 하늘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47절) 어부들은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면 뭍에 돌아와 그물에 걸린 고기를 가려내는 일부터 합니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 큰 물고기와 작은 물고기,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 등을 구분해 냅니다. 비늘이나 지느러미가 없는 것은 부정한 것에 속합니다(레위 11,10-­12; 신명 14,9-­10).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버렸다.”(48절)
우리가 하느님을 의식하든 안 하든, 하느님께 마음을 쏟든 안 쏟든 세상살이는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는 듯 보입니다. 착한 사람한테나 악한 사람한테나 모든 것이 똑같이 주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불구덩이에 던져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49­-50절) 고기를 잡을 때가 있고 그것을 가려낼 때가 있듯이, 선과 악이 명확히 구별될 때가 옵니다. 누구도 그때를 피할 수 없습니다. 악한 자들은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을 맞습니다. 악을 가려내시는 하느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날까지는 악이 선과 섞여 있는 것을 감당해야 합니다.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51ㄱ절) 제자들은 이 비유 설교를 알아듣지만 다른 이들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52절)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이는 집주인과 같아 자기 곳간의 물건을 다 파악하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물건을 꺼낼 수 있을 뿐더러 오래된 것과 새것을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압니다. 이것을 풀이하며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이는 예수님의 설교 주제인 하늘나라를 익힌 사람입니다. ‘새것’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이요, ‘옛것’은 구약성경과 율법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교 율법학자라면 예수님의 언행에 비추어 구약과 율법을 풀이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늘나라의 곳간 열쇠를 맡기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성경은 하느님 나라를 보여주는 곳간과 같습니다. 우리는 성경이라는 곳간의 주인입니다. 현명한 이라면 그때그때 살면서 필요한 해답을 말씀에서 찾을 것입니다. 옛것과 새것을 적당하게 잘 끄집어 낼 줄도 알고 오래된 것에 새로운 것이 있었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말씀의 곳간에서 오랫동안 숨겨진 보물을 발굴해 낼지도 모르고, 그토록 애타게 찾던 진주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말씀에서 기쁨을 찾은 이들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과 말씀을 맞바꿀 것입니다.
 
다시 물으십니다.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51ㄱ절)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에다 열정을 쏟아야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곳간 주인은 우리 자신입니다. 지금은 모든 게 뒤섞여 혼란스럽지만 아무쪼록 선과 악이 판가름 나는 종말에는 하느님 앞에 두려움 없이 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강지숙(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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