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상에서 살아가는 생명의 원천이자 주인이 예수님이심을 선언하는 오늘 복음을 읽다가, 좋아하는 시편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다가 당신께서 외면하시면 어쩔 줄 모르고 숨을 거두어들이시면 먼지로 돌아가지만 당신께서 입김을 불어넣으시면 다시 소생하고 땅의 모습은 새로워집니다.”(시편 104,29-30)
저는 한 해 전례 가운데 재의 수요일을 가장 좋아합니다. 영혼이 떠나면 우리 몸은 욕망의 찌꺼기까지 모아 담고 한줌 재로 돌아갈 것임을 그날만큼 절절하게 느끼는 경우가 없습니다. 이마와 머리카락 사이에 묻었을 재가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집에 가서 세면대 거울을 봅니다.
희끗한 재의 흔적에서, 머지않아 우리 생명이 남겨놓을 먼지와 재를 미리 봅니다. 살아 있는 기쁨과 죽을 운명의 허망함이 얼마나 가까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지 새삼 깨닫습니다. 태초에 불어넣어 주신 입김에 활력을 얻어 뛰고 있는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그러고 있노라면 볼멘 심정, 미운 마음, 쫓기는 두려움이 사라지고 오로지 두려워할 것이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임을 깨닫습니다.
오빠를 잃은 마르타에게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고 하십니다. 이미 죽은 오빠는 세상 끝 날에 다시 살아날 터이니 걱정 말라고 위로하십니다. 이 말씀으로, 조물주께서 이 세상에 들어와서 우리의 고통을 함께 겪으심으로 우리 생명이 새로워진다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바탕이 마련됩니다. 생명의 원천을 믿는가 아닌가가 신앙과 불신을 가르고 소생과 파멸을 정하는 기준이라고 하십니다.
하느님의 입김으로 다시 소생하여 하느님과 한 몸이 되면 우리가 아는 우주의 모습도 달라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하고 신앙을 고백하는 마르타는 얼마나 복이 많은 사람인가요. 창에 찔리신 상처에 손가락을 들이밀어 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믿지 못하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온 제가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해마다 이마에 재를 받으면서 육신의 생명이 짧다는 것과 죽음이 조물주께 돌아가는 여정의 시작이라는 것을 배우고 또 깨달으면서도, 의심은 그늘진 숲의 넝쿨처럼 길고도 질깁니다.
여상훈(도서출판 시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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