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를 체험한 베드로가 얼떨결에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신다면 제가 초막을 짓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는 이 장면을 대할 때마다 남진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로 시작되는 <님과 함께>라는 노래가 떠오르곤 합니다.
요한복음에는 등장하지 않는 이 변모사화를 공관복음은 공통적으로 첫 번째 수난 예고 다음에 배치합니다. 첫 번째 수난 예고와 마찬가지로 이 대목에서도 베드로가 나서서 한마디를 던지는데, 이로써 예수님을 따르던 베드로의 마음가짐이 어떠했는지가 더욱 부각됩니다.
예루살렘에서 죽음을 예고하는 선생님 앞에서는 펄쩍 뛰다가 사탄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던 베드로는 여전히 예수님을 붙잡고 늘어집니다. “선생님, 그러지 말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지요. 여기가 얼마나 좋습니까? 제가 집 한 채 뚝딱 만들어 드릴 테니까 그냥 여기 눌러 살지요?” 그러나 포기할 줄 모르는 베드로보다 더 확고한 어조로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고 하면서 죽음을 향한 당신의 길을 계속 가겠노라고 선언하십니다.
이미 까마득한 옛날 다윗은 하느님께 집을 지어드리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하느님께서는 다윗에게 “내가 살 집을 네가 짓겠다는 말이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러고는 오히려 주님께서 다윗에게 한집안을 일으켜 주고, 그의 후손 왕좌를 튼튼히 해줄 것이며, 그의 후손이 죄를 지으면 매와 채찍으로 징벌하겠지만 영원히 자애를 거두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십니다(2사무 7,1-29 참조). 베드로 역시 먼 길을 돌고 돌아 교회의 반석으로 제 몫을 다하게 됩니다.
기나긴 인생 여정 중에 안주하고 주저앉고 싶은 유혹은 늘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현세의 생활에 안주하는 것이 오히려 사람을 병들게 하고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안주하려는 제자들을 잡아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시던 그 선생님께서 오늘 우리를 이끄십니다.
이정석 신부(전주교구 가톨릭신학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