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수난 예고 직전에 위치한 이 일화에서 제자들의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느냐?”라는 말씀에서 예수님의 답답한 심정이 잘 드러납니다. 제자들은 죽음을 향한 스승의 여정을 이해하지 못할 뿐더러 도무지 당신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지지리 못난 이들 같아 보이니 3년 공부가 공염불입니다. 스승의 속은 타들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는 이와 비슷한 일화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에서 이태 동안 유다인의 회당과 티란노스 학원을 중심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하느님께서 그런 바오로를 통하여 비범한 기적을 일으키자 몇몇 유다인이 “바오로가 선포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명령한다.”라고 말하며 바오로를 흉내 내어 구마행위를 합니다.
특히 스케우아스라는 유다인 대사제의 일곱 아들이 악령 들린 사람을 치유하려 하자 악령 들린 사람이 “나는 예수도 알고 바오로도 아는데 너희는 누구냐?”라며 달려들어 짓누르는 바람에, 그들은 달아났습니다. 바오로가 전하는 복음에는 관심도 없고 단순히 놀라운 능력에만 사로잡혔던 사람들이 졸지에 봉변을 당한 것입니다.
한번 꼬인 실타래를 풀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잘하려 하면 할수록 꼬이고 꼬여 실수를 연발했던 경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마태 10,1)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간질병에 걸린 아이를 고치지 못했습니다. 원인은 그들의 믿음에 있었습니다. 올바른 믿음과 실천 없이 말로만 예수님을 내세운다면 그 믿음이 화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법이지요.
이정석 신부(전주교구 가톨릭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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