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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모든 믿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하느님 - 강길웅 요한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8-08-17 조회수900 추천수10 반대(0) 신고
 

모든 믿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하느님

                 


   아득한 옛날에 세상에는 여러 민족들이 있었지만 하느님께선 특별히 이스라엘 민족을 당신의 백성으로 부르시어 구원의 계획을 실천해 나가셨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3천여 년 전의 일입니다. 따라서 그때부터 이스라엘 백성은 여느 민족과는 다릅니다.


   그들의 후손인 유대인들도 우리와는 근본이 다르고 차원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선 그들만을 당신 백성으로 뽑으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라고까지 부르면서 그들을 천시했습니다. 물론 지나친 교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구원이 꼭 유대인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1차적으로는 물론 유대인만을 위한 것이었지만 그러나 유대인을 통해서 만인을 위한 구원이 하느님의 본래 계획이요 뜻이었습니다. 만일에 하느님께서 어떤 종족이나 지역에 묶이고 한정된 신이었다면 그는 더 이상 '하느님'으로서의 존재 가치는 상실했을 것입니다.


   오늘 성서에서는 바로 하느님께서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도 구원의 은총 안에 포함된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1독서에서는 하느님은 출신 성분이나 특정 민족을 가리지 않고 당신의 계명에 충실하면 어떤 이방인도 성전에 모일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기원전 520년경의 이야기인데 그때 이미 구원은 유대인을 넘어서 이방인들에게까지도 전달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만이 하느님의 백성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불충실과 배신으로 인해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유대인을 포함해서 이방인에게까지도 확대됩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최종적으로 확실하게 드러났습니다. 오늘 복음이 그 단적인 예가 됩니다.


   '띠로'와 '시돈'은 예수님이 활동하시던 가파르나움에서 약 50km 떨어진 서북쪽 해안지방으로서 이방인 지역입니다. 그곳은 특히 우상숭배가 심했던 곳인데 예수님께서 왜 그곳까지 가셨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치 않는 모순과는 달리 그곳에 사는 이방인 여자는 예수를 메시아로 알아 뵙고 구원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놀라운 사건이면서 동시에 '개'라고까지 천시 받는 것을 개의치 않고 끈질기게 예수님께 매달리는 위대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 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아이러니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왜 이방인 여자를 무시하셨느냐 라는 내용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본래 이방인을 천시해서 하신 말씀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이방인 여인의 진실 된 믿음을 제자들 앞에 끌어내어 그들로 하여금 그 신앙과 용기를 배우고 또한 앞으로 전개될 제자들의 전도 활동에 있어서 이방인들이 주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구원은 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성서의 말씀을 들으면서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인 우리도 단지 천주교회 안에서 세례 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구원에 이르는 가장 확실하고도 안전한 길은 예수님께서 세우신 우리 교회이지만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의 백성답게 올바르게 살지 않는다면 구원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아주 희박한 가능성이긴 하지만 실제로도 구원은 개방되어 있다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입니다.


   예를 들어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이 천주교 신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아프리카 의 성자였던 슈바이처 박사나 중국의 고승 달마대사 같은 분들도 우 리 교회 밖에 있었다 해서 그들이 구원받지 못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만일에 구원받지 못한다고 단정한다면 그는 이단입니다. 왜냐 하면 구원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폭넓게 열려 있는 것이며 또 자기 탓이 아닌 것으로, 천주교를 비록 몰랐다 해도 진리를 찾아 걸었던 이들은 넓은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길에 일치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이며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선민'입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가지고 누렸던 특권보다 훨씬 더 위대한 은총이 우리 안에 주어져 있습니다. 여느 다른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개신교 신자들과도 엄연히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의 백성답게 살지 않는다면 그 모든 특권과 커다란 은총은 물거품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가나안 여인의 믿음은 많은 것을 암시해 줍니다. 아무리 무시당해도 예수님께 매달릴 수 있는 신앙인, 가나안 여인처럼 어떤 처지에서도 자신을 끝까지 낮출 수 있고 예수님을 신뢰 할 수 있는 신앙인이 바로 오늘 우리에게 요청되는 믿음의 자세입니다. 구원의 길은 항상 열려져 있습니다.


   진실한 믿음을 늘 간직하도록 합시다.


▒ 소록도 본당 주임 강길웅 요한 신부

 

가톨릭성가480번 /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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