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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의 신비 그리고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
작성자유웅열 쪽지 캡슐 작성일2008-08-19 조회수524 추천수4 반대(0) 신고
 

하느님의 신비 그리고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


성경대로라면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아들딸들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위대한 인물이나 종교의

창시자로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있다.


나는 그분의 자유와, 분명한 생각, 자비와 사랑을 본다.

예수라는 사람을 보면 하느님을 느낀다.

내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단 예수님의 인격만이 아니다.


예수님의 인격에서 인간적인 면을 뛰어넘는 어떤 신비를

접하게 된다. 예수라는 사람을 통해 내가 느끼는 것은

하느님의 신비다.


이런 경험을 나는 이렇게 표현 한다:

하느님은 이 사람을 통해 나를 만나신다. 하느님은 그분을 통해

유일하고 절대적인 방식으로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이 사람이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다.


예수님이 하느님과 닮았다는 말과 하느님과 똑같다는 말은

같은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어느 말이냐에 따라 인간 존재를

이해하는 방식과 우리의 구원과 변모를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과거 교회는 하느님께서 몸소 강생과 구원을 주도하시며, 소외,

죄*생명의 유한성*질병*죽음 같은 우리의 모든 것이 예수님을

통해 변화되고 치유된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졌다.

“오로지 믿고 받아들여야 구원받는다.”였다.


하느님은 예수님의 모든 인간적인 면을 받아들이셨다.

하느님은 출생과  죽음을 받아들이셨고, 기쁨과 고통, 어둠과 빛을

받아들이셨다. 그래서 모든 것이 구원되었다.

“오직 하느님께서만 구원하실 수 있다.”


예수님이 이상적이고 완벽한 인간으로 살지 않고, 우리처럼  장단점을

지니고 유혹과 시련을 겪으며 덧없고 유한한 삶을 살도록 하느님께서

섭리하셨다는 데 바로 구원의 신비가 있다.


하느님과 인간이 불가분의 관계이며, 하느님이 사랑과 성령으로 인간을

온전히 에워싸고 있다는 경험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하인리히 뵐의 소설을 즐겨 읽는다. 그의 작품은 예수님의 모습을

이상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 때문에 고뇌하고 고독과 절망에

몸부림치는 사람들 한가운데 그분의 모습이 보인다. 예수님은 언제나

인간적이다. 뵐의 눈에 비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며, 인간이 되신

하느님이다. 우리의 강생이 이루어지리라는 약속의 징표가 바로 그분이다.


내가 강생하고 온전히 되는 길에 하느님의 영으로 충만하신 예수님께서

함께 동행 하신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중요하다.


그분을 바라보면 어둡고 부끄럽고 약하고 실패한 내 모습이 하느님에

의해 변화되고 치유되어, 하느님이 지으신 대로의 모습을 갖게 되리라는

믿음이 생긴다.


강생하신 하느님의 말씀, 예수님은 하느님 말씀이 내 안에서도 강생하신다는

약속이다. 그리하여 나는 온전한 인간, 하느님의 아들이 된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생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언제 예수님에게서 하느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에게서 하느님과 인간의 모습을 동시에 봅니까?


하느님이 예수님을 통해 사람이 되신 이 신비를 여러분은

어떤 말로 표현하겠습니까? 여러분에게 ‘강생’이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50가지 모습.

오늘의 묵상:                                안젤름 그륀 신부 지음.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멀쩡이 살아서 친구들과 술 한잔 마시며 즐기다 들어와서

잠자리에 들었고 그런 줄도 모르고 그 다음 날 아침에 밥 먹으라고 깨우던 차에

그가 숨져 있은 것을 발견한 아내의 심정을 생각해보자.


하느님께서는 신비하시기 때문에 단지 흙으로 빚어서 당신 모습대로 만드셨고

그 흙에 당신의 숨결을 불어넣으시어 살게 하셨으니 그것이 바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하느님이 보시기에 참으로 좋았던 사람들의 모습이 점차 제멋대로

살아가고 자기가 하느님의 숨결로 살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질투하고 분노

를 일으키어 하느님의 모상인 사람을 죽이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한숨을 지으셨다.


하느님은 후회까지 하셨다. 어찌하여 내가 ‘저런 사람들을 만들었을 고’ 하며 인간들을

모조리 쓸어버려야지 하시었습니다. 그리고 의인 ‘노아’만을 살리시고 흠 없이 살기를

바라시었지만 인간은 교만해지고 하느님 무서운 줄 모르고 이기적이고 자기만이 옳다고

하면서 하느님의 권능에 도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하여 당신 스스로가 인성을 취하시어 사람과 똑같은 모습으로 세상에서 사셨다.

“예수님은 오히려 사랑 때문에 고뇌하고 고독과 절망에 몸부림치는 사람들 한가운데

그분의 모습이 보인다. 예수님은 언제나 인간적이다. 뵐의 눈에 비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며, 인간이 되신 하느님이다. 우리의 강생이 이루어지리라는 약속의 징표가 바로

그분이다.”


하느님의 숨결, 영, 그리고 영원한 생명으로 거듭나게 되는 부활의 신비를 깨닫게

하시려고 세상의 삶을 십자가에 비유하시었고 마침내 돌아가셔서 영원한 삶을 사시고

계십니다.


사촌 처제의 남편, 나와는 동서지간이며 결혼 초기에 만나 40여년을 함께해온

참으로 다정했던 분이셨습니다. 그분의 영정 앞에서 기도 드렸습니다.


주님!, 김 영순 씨의 영혼을 돌보시어,

주님의 곁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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