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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제135 - 150 항)
작성자장선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8-08-20 조회수526 추천수1 반대(0) 신고

완전한 봉헌에 대한 동기들

 


첫째 동기: 마리아께의 완전한 봉헌은 곧 하느님을 온전히 섬기는 것이 된다.


135.

 이 첫 번째 동기는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 자신을 봉헌하는 것이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를 보여준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직업과 의무를 말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을 섬기는 일이다.

하느님의 가장 미천한 종일지라도 하느님을 섬기지 않는 세상의 모든 왕과 지배자들보다 더 부유하고 힘 있고 고귀하며, 전적으로 또 무조건 자신과 모든 것을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바친 하느님의 종들이 갖는 부와 능력과 고귀함은 얼마나 큰가? 이러한 특권은 마리아의 뜻을 따라 충실히 또 모든 사랑을 바쳐 예수 그리스도께 봉사하며 마리아의 손을 통해 "왕 중의 왕"에게 완전히 봉사하고,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는 종에게 주어진다. 세상의 어떤 황금과 하늘의 그 어떤 아름다움일지라도 이에 비길 수는 없다.


136.

 하느님의 영광과 마리아의 영광을 위해 조직되었으면서도 완전한 봉헌은 요구하지 않고 다만 회원들에게 회칙에 따라 신심 행위나 기타 선행을 의무로 규정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그 외의 활동이나 시간은 각자의 자유에 맡기는 신심 단체들도 있다. 그러나 완전한 봉헌을 위한 이 신심은 그렇지 않고 우리의 모든 생각, 말, 행동, 고통, 및 그 외에 우리 생활의 모든 시간들을 예수님과 마리아에게 하나도 남김없이 바치게 한다. 따라서 이 신심을 명확히 취소하지 않는 한 자고 있든 깨어 있든, 먹고 있든 마시고 있든, 큰 일을 하든 작은 일을 하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가 하는 모든 것은 봉헌에 의해 예수님과 마리아의 것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가?


137.

뿐만 아니라 내가 이미 말한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서서히 스며드는 어떤 자만심으로부터 우리를 쉽게 깨어날 수 있게 하는 신심이란 이 신심 외에는 없다. 우리의 좋으신 예수님은 우리 선행의 모든 가치를 자기를 생각하지 않고 마리아를 통하여 하느님께 모조리 바치는 영웅적이고 욕심 없는 행동에 대한 보상으로 우리에게 이러한 은총을 주신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당신께 대한 사랑으로 외적이고 물질적인 덧없는 재물을 버리는 사람에게 백 배로 갚아 주시는데(마태 19, 29) 하물며 내적이고 영적인 재물을 하느님께 바치는 사람에게야 더 큰 보답을 주시지 않겠는가!


138.

우리의 훌륭한 벗이신 예수께서 육신과 영혼, 덕행, 은총, 그리고 공로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우리에게 주셨다. "그분은 당신 존재 전체로써 나의 모두를 사셨다." 라고 성 베르나르도는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께 드릴 수 있는 모두를 그분께 드리는 것이 바로 정의와 감사를 표하는 태도가 아니겠는가? 그분이 먼저 우리에게 관대하셨으므로 이제는 우리도 관대해지자. 그러면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이나 죽었을 때 그리고 영원무궁세에 우리는 그분이 보다 더 관대해지심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당신께 관대한 사람들에게 그분도 관대해지실 것이다."


둘째 동기: 이 신심은 예수 그리스도와 거룩한 삼위 하느님의 모범을 본받게 하고 겸손을 실천하게 한다


139.

둘째 동기는 그리스도께 더욱 완전히 속해 있기 위하여 이 신심의 실천으로 거룩한 동정녀께 전적으로 자신을 봉헌하는 것이 그 자체로서도 옳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유익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착한 스승이신 예수께서는 포로로서 그리고 사랑스런 노예로서 거룩한 동정녀의 자궁 안에 당신이 갇혀 사는 것을, 그리고 후에는 30년 동안 동정녀에게 복종하고 순명하는 것을 모욕으로 여기지 않으셨다.

거듭 말하지만, 거룩한 동정녀의 몸을 통하지 않고서 바로 인간으로 오실 수 있었는 데도 불구하고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취하여 강생하신 이 '지혜'께서 하신 이 행동을 깊이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분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독립된 완전한 성인의 나이로 세상에 오지 않으시고 오히려 이 거룩한 어머니의 보호와 도움에 의지해야 하는 한 가난한 아기로 오기를 원하셨다.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무한한 욕망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강생하신 지혜께서는 그것을 이루는 데 있어 다른 아이들처럼 서른 살에 이르도록 동정녀에게 모든 것에 있어 복종하는 것보다 더 쉽고 완전한 방법을 발견치 못하셨다.

그분에게 기적을 행하고 전 세계로 복음을 전하고 모든 사람들을 회개시킬 수 있는 30년의 시간이 주어졌다 하더라도 그 기간동안 그분이 행하시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렸을 그 모든 일보다도 오히려 마리아에게 순종하고 의존하셨던 그 모든 시간 동안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께 드린 영광이 더욱 크다.

오, 예수님의 이러한 모범을 따라 우리도 자신을 마리아께 복종시킨다면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드높이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온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쉬운 이러한 모범을 우리 눈앞에 두고서도 우리가 마리아 아드님의 모범을 따라 마리아께 우리 자신을 복종시키는 것보다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더욱 쉽고 완전한 다른 방법을 생각하려고 함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140.

우리가 마리아께 속해 있어야 한다는 증거로서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주시는 그 본보기들을 거론하면서 내가 위에서 말했던 것을 여기서 상기하도록 하자.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서는 당신 아드님을 주지 않으셨고 주려고 하지 않으셨다.

성자는 마리아를 통하여 전 세계를 위해서 사람이 되셨고, 성령과 일치에 의해 마리아에 의해서만 매일 각 영혼 안에서 새로 형성되신다. 또 마리아를 통해서만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시키시고 마리아에 의해서 신비체의 지체들을 만드시며, 마리아를 통해서만이 그분은 당신의 선물과 은총을 나누어 주신다.

이처럼 거룩한 삼위의 하느님께서 확고한 모범들을 우리에게 주셨기에 우리는 마리아께 우리 자신을 봉헌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하느님께 나아가고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희생으로 바치려는 목적을 위해 마리아께 의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141.

위에서 언급한 내 말을 증명하기 위해 교부들의 말씀들을 인용하겠다.


"마리아에게는 두 아들이 있는데,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순수한 우리 인간이다. 마리아는 전자에게는 육신적 어머니가 되고, 후자에게는 영적인 어머니가 된다."(성 보나벤투라와 성 오리게네스).


"우리가 모든 것을 성모 마리아를 통해서 얻게 되기를 바라신 것은 하느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희망과 은총과 어떤 유익한 은혜를 입는다면 그것은 마리아를 통해서 흘러 나온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성 베르나르도).


"성령의 선물과 덕행과 은총은 마리아의 손을 통해서, 마리아께서 원하시는 사람에게, 마리아께서 원하시는 때에, 마리아께서 원하는 방법으로, 마리아께서 원하는 만큼 분배된다" (성 베르나르디노).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었으므로 하느님의 은총이 마리아에게 주어졌고 그러므로 우리가 받을 것은 무엇이든지 마리아를 통해서 받아야 한다"(성베르나르도).


142.

베르나르도 성인의 말에 의하면, 하느님의 은총을 직접 받기에는 우리가 너무도 부당하다는 것을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시려고 생각했던 모든 은총들을 마리아를 통해서 받게 하시고자 그것을 마리아에게 주신 것이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은혜에 대해 우리가 보답하려는 감사와 존경과 사랑도 마리아를 통해서 받으시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신다.

그러므로 "은총은 그것이 왔던 것과 똑같은 통로를 통해서 그것을 주신 분에게로 되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하느님의 이 같은 행동을 본받아야만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우리를 봉헌하는 이 신심으로 이루어진다. 즉 우리가 마땅히 하느님께 드려야 할 감사와 영광을 중개자로서의 마리아를 통해 하느님께서 받으시도록 하기 위해 우리의 존재 전체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마리아에게 바치며 봉헌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힘만으로 지극히 무한하신 하느님께 가까이 가기에는 너무나 부당하고 무능하기 때문에 마리아의 중개가 필요하다.


143.

더욱이 이 신심은 하느님께서 다른 어떤 덕보다도 더 사랑하시는 위대한 겸손의 덕을 내포하고 있다.

스스로를 들어 높이는 영혼은 하느님을 깎아내리고, 스스로를 낮추는 영혼은 하느님을 들어 높이는 것이 된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총을 주신다" (야고 4, 6). 만일 우리가 하느님 대전에 나타나서 하느님께 가까이 가기에는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스스로 낮추면 너그러우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내려오셔서 흡족한 마음을 가지시고 우리에게로 낮추신다.

반대로 만일 우리가 뻔뻔스럽게도 중개자 없이 하느님께 가려고 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로부터 멀리 달아나시기에 우리는 도저히 하느님께 도달할 수 없다. 오, 그분이 얼마나 우리 마음의 겸손을 사랑하시는지를 우리가 안다면! 이 신심이 우리에게 권하는 것도 다름 아닌 겸손이다.

이 신심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하느님께서 아무리 온유하고 자비로우시더라도 우리의 힘만으로 직접 그분께 가까이 나아가서는 안 되며 하느님 앞에 나아가거나 그분에게 말씀을 드려야 할 경우 또는 그분과 일치하고 그분에게 자신을 바치기 위해서,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중개자이신 마리아를 모셔야 한다는 것이다.


144.

 온유와 자비의 어머니이시고 자신을 전적으로 바치는 것을 보시면 마리아께서도 놀라운 방법으로 당신 자신을 그 사람에게 주신다.

마리아께서는 그 사람을 당신의 은총 속에 잠겨 들게 하시고, 당신의 공로로 아름답게 꾸미시며, 당신 능력으로 도와주시고, 당신 빛으로 비추시며, 당신 사랑으로 가득 채워 주시고, 당신의 겸손과 신앙과 순결 등의 덕행들을 전해 주신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는 그 사람을 위한 보증인이 되어 주시며, 대리자가 되어 주시고 그의 모든 것이 되어 주신다.

마리아께 봉헌된 사람이 전적으로 마리아의 모든 것인 것처럼 마리아께서도 그의 모든 것이 되시며 따라서 복음 사가 성 요한이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시고서 "그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 (요한 19, 27)고 자기 자신에 대해 말했던 것처럼 우리도 마리아의 완전한 종이며 자녀라고 말할 수 있겠다.


145.

만일 그 사람이 충실하다면 그는 자기 영혼 안에서 자신에 대한 불신과 업신여김과 미움을 가지게 되는 반면에 사랑하는 여주인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 대해서는 지극한 신뢰와 완전한 봉헌의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그는 종전처럼 자신의 결심, 생각, 공로, 덕행과 선행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그가 이미 자신의 전부를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 바쳤기 때문이며 이제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자신의 모든 보물을 담아 놓은 보고, 즉 마리아뿐이다.

이렇게 된 후에 그는 비굴함이나 어떠한 두려움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께 접근할 수 있게 되고 굳은 신뢰를 가지고 기도하게 되며 신심이 깊고 학덕이 높은 루페르트 수도원장과 같은 감정을 갖게 된다.

그는 야곱이 천사와 씨름을 하여 얻은 승리를(창세 32, 24-25 참조) 마리아께 대한 찬사로 바꾸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

오,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티없이 깨끗하신 어머니시며 여왕이신 마리아님, 저는 사람이 되신 말씀과 씨름하고자 하며, 그러나 저의 힘이나 공로로 무장하지 않고 오직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신 당신의 간절한 기도와 공로로써만 무장하여 싸우고자 하나이다."

아!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과 같이, 사랑으로 전능하신 분을 차지하신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중개와 공로로 우리가 무장했을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강력하고 힘 있게 되지 않겠는가!


146.

 이 신심에 의해서 우리의 모든 선행을 마리아의 손을 통해서 하느님께 바친다면 마리아는 그것을 정화시켜 주시고 아름답게 꾸미셔서 당신 아드님의 마음에 들게 해주신다.

첫째, 마리아는 이기심의 더러움과, 우리의 선행에 서서히 스며드는, 피조물에 대한 애착을 깨끗이 씻어 우리의 선행들을 순수한 것이 되게 해주신다. 우리의 모든 선행들이 축복된 마리아의 손 안에 들어가면 우리가 바친 것 중에서 불완전한 것과 불결한 것은 모두 깨끗이 정화된다. 왜냐하면 마리아의 손은 항상 깨끗하고 부지런하여 마리아의 손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지 깨끗이 정화되기 때문이다.


147.

둘째, 마리아는 우리의 선행을 당신의 공로와 덕행으로 장식하여 아름답게 하신다.

마치 한 농부가 왕의 우정과 호의를 얻기 위해 자신이 애써 가꾼 사과를 왕후에게 가지고 가서 그것을 왕에게 바치게 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 왕후는 농부의 이 보잘것없는 작은 선물을 아름다운 금쟁반에 담아 농부의 선물이니 받아 주십사고 왕에게 갖다 바칠 것인데, 그때 그 자체로 보아서는 농부가 바치는 선물이 왕에게 어울리지 않지만 그 사과가 담겨 있는 금쟁반의 가치와 그것을 갖다 바치는 왕후의 품위로 말미암아 그것은 엄위한 왕에게 드리는 훌륭한 선물이 될 것이다.


148.

셋째, 마리아는 우리의 선행들을 예수 그리스도께 바치신다.

마리아는 우리가 당신께 바친 것을 하나도 자신의 것으로 남겨 두시지 않으시고 그 전부를 예수 그리스도께 충실히 바치신다.

그러므로 마리아께 바치는 것은 필연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바친 것이 되는 셈이다.

또 마리아를 찬미하고 영광되게 한다면 마리아께서는 즉시 예수 그리스도를 찬미하고 영광되게 하신다.

일찍이 엘리사벳 성녀가 마리아를 찬미했을 때 그러셨던 것처럼, 지금도 우리가 마리아를 찬양한다면 마리아는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루가 1, 46) 하고 즐겨 노래하신다.

 

149.

넷째, 우리의 선행이 지극히 거룩하시고 왕 중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선물로서 너무나 미약한 것이지만 마리아의 손으로 바쳐질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즐겨 받으신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의 노력과 기질에 의지하여 그것을 직접 예수 그리스도께 바친다면 예수께서도 그 선물(선행)을 일일이 검사하실 것이며, 그 선물에 이기심의 흠집이 있다는 이유로 자주 내치실 것이다.

마치 옛날에 유다인들이 바치는 제사를 자만심이 가득 찼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으신 것과 같다. 그러나 만일 그분의 극히 사랑하올 동정 어머니의 정결한 손을 빌려 바친다면, 이 같은 표현이 허락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약점을 잡는 것이 되는데 그분은 마음이 누그러져서 그 사람이 바친 선물은 보시지 않고 그것을 바치는 사랑하올 어머니만 주시하시며, 그 선물이 누구의 것인가는 알려고 하지 않으시고 그 선물을 직접 바치는 사랑하올 어머니를 보시고는 거절하지 않으실 것이다.

즉 예수님은 당신이 항상 즐겨 환영하는 착한 어머니가 바치는 선물은 크고 작음을 상관치 않으시며 절대로 거절하는 법 없이 즐겨 받아들이신다. 베르나르도 성인이 완덕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준 훈계도 바로 이것이었다.

"만일 하느님께 무엇을 바치려고 할 때 거절당하지 않으려거든 지극히 기분 좋고 지극히 품위 있는 마리아의 손을 반드시 거치도록 하여라!"


150.

 세상에서도 미소한 자가 귀한 이들 앞에 나설 때 그러하지 않는가? 그런데 하물며 하느님 앞에서 한낱 티끌보다 못한 우리가 하느님께 대하여 그러하도록 은총이 우리를 인도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아직 한 번도 거절당한 적이 없는 유능한 변호자이고, 하느님의 뜻에 의합하는 모든 비결을 알고 있는 재치 있고 총명한 분이며, 보잘것없이 비천한 사람이라도 절대 거절하지 않는 선량하고 자애로운 분, 그분을 우리는 우리의 유일한 대변자로 모셔야 하는데 그분은 바로 마리아이시다.

나는 뒤에 가서 야곱과 리브가의 이야기를 비유로 들어 이 진리들의 참모습을 이야기할 것이다.


 

성 루도비꼬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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