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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네 마음을 다하고'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8-08-22 조회수654 추천수4 반대(0) 신고
<네 마음을 다하고>(마태 22,34-40)

 -유광수 신부 -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비록 율법교사의 의도가 순수한 마음으로 질문한 것은 아니지만 이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먼저 나 자신에게 던져지는 질문은 과연 내 삶에서 반드시 지켜야하는 가장 큰 계명이라는 것이 있는가? 있다면 무슨 계명인가?

 

계명이란 "함께 보내다."라는 뜻이다. 즉 무엇을 향해서 내 자신을 내 던지는 것이다. 내가 지켜야할 계명이 있다면 내 몸과 마음이 그 계명을 위해 던져지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라는 계명이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릴 때부터 이 계명을 지키며 살려고 노력하였다.


"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의 하느님은 야훼시다. 야훼 한 분뿐이시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의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여라.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라.

이것을 너희 자손들에게 거듭거듭 들려 주어라. 집에서 쉴 때나 길을 갈 때나 자리에 들었을 때나 일어났을 때나 항상 말해 주어라. 네 손에 매어 표를 삼고 이마에 붙여 기호로 삼아라. 문설주와 대문에 써 붙여라."고 말씀하셨듯이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어린이들이 부모로부터 귀가 달도록 들어온 말이었고 또 그렇게 살려고 노력해왔다.

 

 "우리의 하느님은 야훼이시고 한 분뿐이시고,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여라."는 계명은 어느 한 사람만이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지켜야할 계명이었다. 전 국가적으로 이런 계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인가?

 

"대-한민국"이라는 한 마디의 환호성이 좌절과 실의와 분열로 심체되어있던 온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했고 일치감을 맛보게 했고 대- 한민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했고 긍지를 갖게 하였던 큰 에너지를 우리는 얼마 전에 경험한 바 있다. 온 국민의 에너지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어떤 구호나 교훈같은 것이 있다는 것은 정말 위대한 일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구한 역사를 내려오면서 한결같이 그네들만이 하나로 뭉치고 통일된 정신자세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었던 위대한 힘은 바로 이 첫째 가는 계명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우리는 단일 민족이라고 하면서 과연 자손들에게 거듭거듭 들려줄 수 있는 어떤 위대한 가르침이 있었는가? 대-한민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해주고 대-한민국인으로서 흩으러지지 않는 자세로 살아갈 수 있게 바쳐주고 이끌어 주는 어떤 계명이 있는가? 오늘날은 물론 과거에도 좁은 땅 덩어리에서 끊임없이 갈라지고 서로 싸우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 민족을 하나로 일치시켜 주는 어떤 위대한 계명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뚜렷하게 내세울 만한 민족 전체가 공동으로 추구할 수 있는 어떤 정신적인 가치도 목표도 없다. 나라가 그러하고 가정도 마찬가지이다.

 

부모가 갓 태어난 자식에게 이스라엘 백성처럼 자손들에게 거듭거듭 전해줄 어떤 교훈이나 가르침이 없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힘들 때나 괴로울 때 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잘 판단이 서지 않을 때 내 인생의 지침이 되고 빛이 되어 줄 수 있는 어떤 가르침이나 계명같은 것을 부모로부터 전수받은 기억이 없다. 나뿐인가? 부모의 가르침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며 살아가는 자식들이 얼마나 될는지 의문이다.

 

우리네 부모들의 입에서 그냥 잘 먹고 건강하게 자라고 돈이나 많이 벌고 출세하라는 것 이외에는 별로 들어 본적이 없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잘 사는 것인지 그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왜 믿어야 하는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왜 기도해야 하는지, 기도를 하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도무지 자손들에게 거듭거듭 전달되는 것도 없고 또 전달하고자 하지도 않는다.너는 너로서 너의 생활을 하고, 나는 나의 생활을 하고 그저 오늘 하루 큰 사고 없이 생활했으면 되고 각자 먹고 각자 생활하고 언제 들어오고 언제 나가는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서로 간섭을 하지 않고 기분 상하게 하지 말고 좋게 좋게 지내면 된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대상을 "자기 마음 속에 담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우리의 모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느님을 닮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완전한 모상인 하느님을 우리 마음 속에 담을 때만이 가능하다. 인간은 본래부터 혼자 있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반드시 자기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거들 짝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의 부족함을 채워 줄 거둘 짝을 찾고 있고 그리워 한다.  그리고 거둘 짝을 만났을 때 그를 사랑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와 함께 있으면 자기의 부족함이 채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가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의 마음 속에 부족함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채우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내 마음 속에 담는 것이다.

 

이태리 나폴리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이 왜 사는지 또 무엇 때문에 사는지 몰라도 살아갈 수 있지만 사랑할 대상을 찾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다." 사랑할 대상만 있으면 그냥 행복한 거다. 세월이 가든 말든, 차가 밀리든 말든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으면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좋고, 눈이 내리면 눈이 내려서 더욱 좋다. 차가 밀려 늦게 도착하면 늦게 도착해서 좋고, 빨리 도착하면 빨리 도착해서 좋다. 사랑하는 사람하고만 있으면 늘 행복하다. 왜 사는 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 그런 골치 아픈 것을 생각하지 안해도 이미 사랑하는 사람만 함께 있으면 그 자체로 행복하다. 


그러나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행복하게 해 줄 수는 없다. 우리 마음을 완전하게 채워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시다. 그래서 하느님 사랑이 첫째 가는 계명이다. 하느님을 내 마음에 담으면 영원히 행복할 수 있으니까.

하느님을 사랑하게 되면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도 내가 사랑하는 하느님의 자녀요, 하느님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것이면 모든 것이 사랑스럽고 모든 것이 아름답고 귀하고 좋은 법이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아무튼 우리가 자식들에게 또 하느님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주어야 할 계명은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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