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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때로는 우리도 어린이가 되고 싶다.
작성자유웅열 쪽지 캡슐 작성일2008-08-23 조회수509 추천수7 반대(0) 신고
 

때로는 우리도 어린이가 되고 싶다.

(어린이를 좋아 하신 예수님)


“어린이들이 내게 오도록 그냥 두시오. 막지 마시오.

하느님 나라는 이런 이들의 것입니다. 진실히 말하거니와

어린이처럼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결코

거기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고는 어린이들을 껴안고

손을 얹어 축복하셨다.”(마르 10, 13-16)


하느님 나라에 들려면 율법을 준수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어린이처럼 작아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항상 빈손으로

하느님 앞에 서 있노라고 고백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뜻이었다.


어린이처럼 하늘나라를 받아들인다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

꿈에 나타나는 어린이는 거짓 없는 마음, 본연의 것, 우리 안에

생성되는 새로운 것을 상징한다.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인다는 것, 자신 안에 하느님께서 계실

곳을 마련한다는 것은, 하느님 앞에서 쓰고 있는 가면을 벗어

버리고 온전한 우리 모습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예수께서 어린이들을 품에 안은 것처럼 우리도 우리 안에 있는

어린이를 보살펴야 한다. 우리 안에는 방치되고, 매 맞고, 기가

질려 마음의 상처를 입은 어린이가 있다.


그리고 우리 안에는 창조성과 생명력의 샘, 순수와 진실의 샘인

하느님 닮은 어린이가 있다.


예수님은 머리에 손을 얹어 어린이들을 축복하신다. 우리 안의

상처 입은 아이는 보호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예수님의 축복은

보호공간과 같고. 어린이들은 여기서 보호받고 있다는 안정감을

얻는다. 


우리 안의 상처 입은 삶은 이 보호공간 안에서 꽃을 피운다.

어린이들의 모습에서 인간의 거짓이 없고 비뚤어지지 않은

원래의 모습을 보았고 어린이들을 훈계하시지 않았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의 왜곡되지 않은 본래

모습 위에 손을 얹어 축복하신다.


여러분은 최근에 꿈속에서 어린이들을 본 적이 있습니까?

이 어린이들은 여러분이 삶의 길을 갈 때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줍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존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순간, 이 어린이들은 여러분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주고, 관심을

가져 달라고 소리치는 어린이가 여러분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여러분은 어린이들을 좋아하고 그들과 잘 어울립니까?

어린이들에게 기쁨을 주고 그들의 뜻과 생각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까?

어린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까? 어린이들에게 배우려는 마음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50가지 모습.

                           안젤름 그륀 신부 지음.

오늘의 묵상.:

어린이와 어른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린이는 천방지축이라는 말로 국어사전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너무 급하여 방향을 잡지 못하고 함부로 날뛰는 일.” 또는 “못난 사람이

종작없이 덤벙이는 일.”


세 살이나 네 살이 된 어린아이를 보면 그 아이들이 누구를 믿고 이리저리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위험을 모르고 가고 싶은 곳으로

가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른이 볼 때 분명이 위험한 곳이기 때문에 말리고

있는 것입니다.


어제 한일 전 야구를 보았습니다. 2대 0으로 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4번 타자인

그 유명한 이 승 엽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기대했던 안타나 홈런을 쳐내지 못하고

세 번 씩이나 번번이 삼진 또는 내야수에 공을 갖다 주고 ‘아웃’을 당했습니다.


그럴 적마다 ‘너무 속상하여 욕을 해대며 감독은 왜 저런 선수만을 고집하고 있는 거야’

하며 투덜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4번 째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2 대 2 동점의 상황에서 주자가 한사람 나가 있었습니다. 이때 그래도 4번 타자이니

기대 반으로 마음을 졸이면서 지켜보았습니다. 첫 번째 공을 치지 못하고 속아 넘어갔고,

두 번째는 헛방을 쳤습니다. 이제 한방을 헛치면 이길 방법이 없게 되는 순간을 맡게

되고 또 다시 기대했던 4번 타자 이 승 엽에 대한 기대를 접어야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홈런을 쳐 낸 것입니다. 그렇게 잘못한 첫 번째,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타석에서 실망했던 일이 마치 ‘못난 사람이 종작없이 덤벙이고’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어린이가 천방지축으로 허둥거렸던 것입니다.


기쁨이 하늘을 찌르고 실망했었던 이 승 엽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야구 감독이 믿고 있었던 그 믿음은 어른의 믿음이었고 우리들 철부지들은 그야말로

어린애들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철부지 아니 천방치축으로 날 뛰는 어린이들을 좋아 하셨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왜 그러셨을까? 그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

하였습니다.


아마도 어린 아이들은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어하는 그 마음이 아닐까?

그 때, 그 때 아무런 의심을 품지 않고 마음 가는대로 따라가는 그 마음을 좋아하신 것이

아닐까? 그 길이 어떤 길인지도 모르면서도 그저 따라가는 그 마음을 좋아하셨을 것입니다.


두려움을 모르고, 그 어떤 가면을 쓰지 않고, 예수님이 당신의 따뜻한 품에 끌어 당겨

그 품에 힘껏 끌어안고, 가슴과 가슴을 맞대고 정을 통하고자 달려드시는 예수님을 그냥

받아들이는 어린 아이를 좋아하신 것이 아닐까?


마치 우리가 손자 나 손녀가 사랑스러울 때 가슴으로 끌어안고 품어 주고 싶은 심정과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어린애와 같이 예수님의 품에 안겨

그 분의 사랑을 가식 없이 받아들이고 주님의 품에서 사랑을 느끼고 사랑을 베풀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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