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시각장애를 가진 교우들과 미사를 봉헌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새삼 ‘본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6년 전 이분들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앞을 못 보는 것처럼 답답한 일이 또 있을까? 내 시력은 아직도 멀쩡하니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분들의 경건한 신앙을 접하면서 내 멀쩡한 시력이 부끄러울 때가 있었다. 과연 나 자신을 포함해서 정상 시력을 가진 사람들은 사물의 진상을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일까?
어느 시인의 말처럼,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당나귀를 근사한 말로, 다른 사람의 근사한 말을 당나귀로 간주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언급하신 ‘눈먼 이’란 누구보다도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눈 뜬 장님’을 의미하는 것일 게다.
탐욕스런 눈으로 돈과 권력과 쾌락만을 쫓아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좌파니 우파니 하는 낡은 이념적 이분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종교적인 광신은 또 어떠한가? 하느님의 빛에 눈이 멀어 자기와 같은 신앙을 고백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사악한 악마로 보는 종교인들도 있다. 광신에 눈먼 종교인은 결국 자신을 숭배하는 사람이다. 내가 자신의 의로움에만 시선을 고정하는 한 나 또한 눈먼 상태에 있는 셈이다.
아마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의 눈이 열린 사람이 맨 먼저 보게 되는 것은 ‘자신의 죄스러움과 비참함’일 것이다. 오직 이렇게 자신을 제대로 보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하느님의 구원을 갈망하지 않겠는가?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눈이 열린 신앙인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자기들이 불완전하다기보다는 병들어 있다고 믿는 그만큼 사람들은 종교적이다. 반쯤이라도 분별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지극히 불완전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종교적인 사람은 자신이 가련하다고 믿는다.”
이종진 신부(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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