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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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복순 | 작성일2008-09-02 | 조회수875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루가 4,31-37)
-유 광수신부-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가파르나움 고을로 내려가시어,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이 성서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는 말씀을 하신 이후에 곧 이어서 루가는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에 대해 말한다. 권위란 희랍어로 "엑수시아"(Exusia)라고 하고 그 뜻은 "힘"이라는 뜻으로 오직 하느님께만 사용하는 단어이다. 권위 있는 가르침이란 하느님의 힘이 담겨있는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무슨 힘인가? 창조의 능력, 치유의 능력, 마귀를 쫓아내는 능력, 병자를 고쳐주는 능력 등이 담겨져 있는 가르침이다. 그래서 오늘 당신이 하신 말씀을 듣는 이 가운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은총의 말씀이다. 그래서 탄복하고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의 힘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성령이다. 성령을 "푸네우마"라고 하는데 "입김, 힘, 기운"이라는 뜻이다. 성령은 하느님이시다. 이 성령은 예수님이 이 지상에서의 활동을 마치시고 하늘에 올라가신 이 후 우리 가운데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이시며, 우리 가운데에서 구원 사업을 이끌어 가시는 주체이시며, 우리 안에서 놀라운 역사를 주도해 나가시는 하느님이시다. 그러나 성령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른다. 즉 말씀이 하느님의 힘이 담겨져 있는 것이라면 왜 내 안에서는 이런 능력이 일어나지 않는가? 내가 매일 말씀을 읽고 들어도 내 안에서 아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나지 않는가? 라고 말이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질문이다.
하느님의 권위는 위엄 있는 권좌에 앉아서 선포하는 권위가 아니다. 높은 곳에서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권위가 아니다. 하느님의 권위는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칭찬 받기 위한 권위가 아니다. 하느님의 권위는 봉사하기 위한 권위이고 힘이다. 즉 봉사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봉사하러 오셨기 때문에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시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봉사하신다.
오늘 복음에서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처럼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라고 거부한다면 그리고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라고 말로만 또는 교만한 마음으로 또는 머리로만 아는 척 하는 이들 안에서는 절대로 역사하지 못하신다.
예수님은 오늘도 권위 있는 말씀으로 가르치신다. "가르치셨다."는 동사는 반 과거이다. 반과거는 가르치는 것이 끝났다는 것을 말하는 과거의 행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때부터 가르치기 시작한 가르침이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2천년 전에 가르치기 시작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때에는 인성을 취하신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치셨다면 오늘은 말씀을 통하여 가르치신다. 따라서 예수님의 가르치심인 말씀을 어린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마치 스폰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권위 있는 가르침을 온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에 순명하지 않는다면 말씀은 우리 안에서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지 않으신다. 말씀 앞에서 무성의한 마음, 교만한 마음, 목마름이 없는 마음으로 머무는 사람에게서는 그 어떤 놀라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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