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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의 몸부림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09 조회수962 추천수0 반대(0) 신고
프랑스의 가톨릭철학자였던 자크 마리땡(Jacques Martain, 1882-1973)은 아내가 죽자 아내가 출판하고 있던 <Raissa’s Journal>의 머리말에 갑작스러운 아내의 죽음에 대하여 말하고 그의 생각을 썼다.
 
“무어라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처신에 관한 것입니다. 라이사(Raissa)가 갑자기 실어증(失語症)에 걸려서 자신 안에 갇혀 버려 우리 부부에게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뒤의 넉 달 동안은 몹시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몇 주 동안 아내가 혼신의 힘을 다하여 병마와 싸워 다소 나아지기는 했지만 부부 사이의 대화는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더욱이 병이 도져서 겨우 더듬거리면서 말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내는 처절한 싸움을 했지만 나뿐만 아니라 세상의 어느 누구도 아내를 도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아내는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고, 정신을 잃지 않았으며, 여전히 친구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으며, 유머 감각도 잃지 않고 있었으며. 멋진 미소(병자성사 후에 Pere Riquet에게 감사를 하면서 웃었던 모습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를 잃지 않았으며, 예쁜 눈에서 나오는 범상치 않은 눈빛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나 이 동안에는 성자(聖者)의 눈에만 “포근한” 사랑으로 비치고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만 “포근한” 사랑으로 비치는 식으로 사람들을 무시무시한 방법으로 사랑하시며 아내도 이 방법으로 사랑하셨던 하느님께서 무자비하게 도끼로 아내를 내리찍고 계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이미 성자(聖者)인 사람이나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만 달콤하게 느껴집니다. 이는 하느님의 사랑뿐만 아니라 모든 사랑이 그러합니다.
 
 꿈이 아닌 현실세계에서 사랑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기 위하여 싸구려 낭만 소설이나 영화조차도 보려고 하지 않고 규칙적으로 교회에만 나가고 있다. 나는 매일 미사에 참례하여 성실하고 신앙심이 깊고 정직하고 신자답게 살고 있는 선한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비록 신앙의 울타리 안에 같이 서 있기는 하지만 나 자신을 위시하여 그들도 인간이므로 성가로 노래하는 화목과 사랑의 아름다운 그림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신앙 안에서 모여 있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자신 안에 있는 질투, 화, 상처, 편집증, 불신과 무능함을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또 현란한 사랑의 말 속에는 긴장감과 경원(敬遠)이 있고 심지어는 적대감마저 있다. 마음을 활짝 열고 이웃을 환대하라는 성가를 씩씩하게 부르고는 있지만 실상은 아무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성자가 되어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러한 것이다. 실제로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영원한 사랑은 어렵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진심으로 사랑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사랑해요.”하는 말을 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더 어렵다.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아주 조심스럽게 써내려 갈 수밖에 없다고 느낀다. 충실(忠實, fidelity)과 존경의 두 단어로 요약하고 싶다. 사랑은 말에 대하여 책임을 지며 피하지 않고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 또 내면에서 시키는 대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축복하고 다른 사람이 성장하도록 도우면서 진심으로 존경하는 것을 뜻한다. 누구나 다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할 때가 많지만 잘 알다시피 사랑은 느낌의 문제가 아니라 충성(fidelity)의 문제이다. 즉 실제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우리 대신에 해주시는 즉 가족과 공동체 안에 머물게 해주시는 하느님의 선물로, 교회와 성체성사가 뜻하는 것이 바로 사랑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돌아 가시기 전 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앉아 계시면서 보신 것은, 우리들이 교회에 갈 때마다 보게 되는, 질투하지 않으려 하고 화내지 않으려 하고 편견에 빠지지 않으려 하고 상처를 잊으려고 몸부림치면서 살고 있는, 진실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우리들이 할 수 없는 일 즉 서로 사랑하는 일을 하느님께서 대신 해주시도록 청원하기 위하여 교회에 나가고 성체성사를 받고 있는 것이다.
 
 마리땡의 말이 옳다. 하느님의 사랑은 이미 성자가 되어 있는 사람이나 너무나도 순진한 사람들에게만 포근하게 느껴지게 된다. 우리는 아직 성자가 되어 있지 않을뿐더러 순진하지도 않으므로 겸손해져야 하며 악에 빠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현실을 받아 들이고 우리들이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해 주는 곳으로 가야 한다.
(2008-09-07 롤하이저 신부님의 칼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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