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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말하다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19 조회수473 추천수2 반대(0) 신고
순진한 어린이에게 “너는 산타클로스를 믿니?”하고 물으면 “그럼요.”하고 대답한다. 그러나 총명한 어린이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아니오.”하고 대답한다. 그러나 더 총명한 어린이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그럼요.”하고 대답한다.
 
우리 모두 “다시 순수하게 될(revirginization)” 필요성이 있고, 우리 모두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묻는 질문에 예라고 답변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질문을 던져 본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하면 다시 순수해질까? 어떻게 노력하면 다시 순진해질 수 있을까?
 
먼저 새로운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하며 모르는 것이 없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체스터톤이 말한 대로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을 보고 잘 모르는 것처럼 느낄 때까지 직시하여 다시 배워서 깨달아야 한다.
 
현실로 돌아가기 이전에 의식적으로 또 침착하게 어린이의 자세를 취하는 노력을 기울여야만 그렇게 될 수 있다. 먼저 다시 기본적인 정신(primal spirit)을 되찾아야 하며, 호기심을 가져야 하며, 현실은 신비로 가득 차 있다고 느껴야 하며, 현실과 여러 가지 금기사항을 아직도 잘 모른다고 생각하고 순진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침착하게 다시 곰곰이 생각하여 이들을 존경하는 생각을 되찾아야 한다. 이러한 노력과 함께 우리들 안에 남아 있는 냉소주의, 경멸 그리고 무지로 말미암아 생긴 신비감, 미신으로 믿게 된 금기사항들, 낭만적이고 순진하여 생긴 이상(理想) 등의 잔재를 계획적으로 그리고 의식적으로 없애버리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삶은 긴장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만족하는 삶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며, 채워지지 않음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또 이를 테면 모든 면에서 첫 날 밤 전에 신부와 잠자리를 같이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성적(性的)으로, 경제적으로, 감정적으로, 영성적으로 기다리는 법을 배워서 다시 순수해지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 방법으로 다시 순수해지고 다시 어린이처럼 순진하게 되려면, 청순하게 살려는 생각을 가져야 하는데 자신과 주변에는 신성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을 되찾고 그런 생각에 따라 사는 것이다.
 
아마 다시 순수해지는 과정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다음의 두 은유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지역에서 기상이 다시 평온을 되찾은 느낌: 어떤 지역이 자연 재해나 인재(人災)로 심하게 파괴되었다고 생각하자. 물은 더러워지고 오염되고, 채소는 다 죽어 버리고 자연적인 아름다움이 파괴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태양, 비, 바람, 폭풍우, 서리와 눈이 그 지역을 다시 깨끗하게 만든다(revirginize). 물은 다시 깨끗해지고 맑아지고, 채소는 생명을 되찾고 마침내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되찾게 된다. 말하자면 그 지역이 다시 청순(淸純)해져 “순수한 지역(virgin territory)”이 된다.
 
 우리들의 마음이 이러하다: 우리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지 않고 난잡한 짓을 하여 마음을 손상시키지만 않는다면, 점차 순수함을 되찾아 무언가를 다시 알아가고 사랑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것이다.  
 
태아가 느끼는 어두움의 이미지: 자궁 안에서 인간이 잉태되는 과정을 생각해 보자. 단지 알에 지나지 않는 세포 조각이 만들어지고 그 주위에 영양을 공급하여 훨씬 더 커지게 된다. 이 과정은 어둠 속에서 일어나고 어두운 평화 속에서 일어난다. 유아로 충분히 성장한 후 마침내 처음으로 세상 밖으로 나온다. 실제로 자궁 안에는 신비로 가득 차 있지만 유아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오래 동안 자궁 안에 있게 된다. 유아는 보기는 하지만 이상하게만 생각한다.
 
 어린이처럼 다시 순진해지는 과정이 이러하다. 우리는 진정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은유적으로 설명하면 우리는 다시 단지 작은 하나의 알이 되기 위하여, 곧 어둠 속에서 다시 잉태되기 위하여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자궁 안의 태아가 느끼는 어둠으로 여행하여(모른다는 것을 알기까지의 어두움), 황량하게 느끼고 놀라기만 할 뿐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이름도 말할 수 없고 셈도 셀 수 없지만 본래의 모습 대로 작은 알로 변신하여, 모든 것이 새롭고 경이로운 새로운 의식을 갖고 다시 눈을 떠야 한다.
 
 체스터톤(G. K. Chesterton)은 이를 아름다운 시로 표현하였다.
“나의 모든 날이 끝나가고 있을 때 그리고 노래할 노래가 없을 때에도
나는 너무 늙어서 설마 아무것도 응시하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다시 한번이라도 탁아소 문이나 키가 큰 나무와 그네를 볼 수만 있다면…….”
(체스터톤의 <A Second Childhood> 중에서)
 
주님, 탁아소 문을 쳐다 보듯 한 번이라도 모든 것을 볼 수 있도록 너무 늙지 않게 해주시고, 너무 닳고닳아 빠지지 않도록 해주시고, 너무 어른스럽게 되지 않도록 해주시고, 너무 타락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롤하이저 신부님의 묵상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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