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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 기본 예의는 지키며 종교활동 합시다"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25 조회수551 추천수2 반대(0) 신고
           "우리 기본 예의는 지키며 종교활동 합시다"
                          타 종교 비방과 타 종교 비방을 수용하는 집단최면 현상




나는 겁이 많습니다. 평소 사소하고 흔한 일 앞에서도 이상한 두려움에 젖곤 합니다. 팔팔했던 청년 시절부터 지녀온 병 아닌 병인데, 환갑을 먹은 이 시절에도 버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정말 나는 묘한 공포증에 걸린 사람입니다.

내 공포증은 막연한 것 같으면서도 실체가 분명하지 싶습니다. 주변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들, 수시로 보고 겪는 일인데도 정상에서 벗어나거나 과한 일들을 보게 되면 절로 공포를 느끼곤 합니다. 어쩌면 내 공포감 자체가 정상이 아니거나 과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내 이상한 공포증을 극복하지 못합니다.

때로는 다른 많은 사람들의 무감각증 같은 것이 부럽기도 합니다. 이 나이에 이르도록 면역성 같은 것을 가지지 못한 나 자신이 한심스럽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도 한숨짓고 곱송그리고, 때로는 치를 떨기도 하는 나를 느끼면서 그 때문에 도리어 한숨짓는 경우도 있습니다.  

길에서 차창 밖으로 버려지는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볼 때도 나는 공포를 느낍니다.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를 먹으며 길을 걷는 아이들이 껍질과 봉지를 아무데나 버리는 것을 볼 때도 공포를 느낍니다. 걷기 운동을 하다가 들길이나 산길, 해변 길에 마구 버려진 쓰레기를 불 때도 공포감으로 곱송그리며 한숨을 내쉽니다.

내 공포감은 슬픔이나 절망감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슬픔이나 절망을 느끼는 현상일 수도 있고, 슬픔이나 절망에 대한 두려움의 반영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나는 이래저래 고민도 많고 가슴의 통증도 많은 사람입니다.

'예수 믿으라'는 소리 들으며 심한 공포감 느껴


▲ 지하철역 근처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예수천당 불신지옥'  
ⓒ 권우성  

어쩌다 서울에 가서 전철을 탈 때는 천원짜리 지폐 두어 장을 꺼내기 좋은 주머니에 따로 넣고 다닙니다. 나는 만65세가 되려면 아직 몇 년이 남았지만, 몇 년 전부터 무임 승차권으로 전철을 이용합니다. 승차권을 사지 않아도 되니, 그 돈을 다른 쪽으로 사용하려고 따로 떼어놓는 거지요.

전철을 타다 보면 종종 적선을 호소하는 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대개는 작은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 다니지요. 저만치에서 그들이 내는 음악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묘한 긴장을 느낍니다. 열차 안에 제법 사람들이 많음에도 적선에 참여하는 손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볼 때는, 거기에서도 묘한 공포를 느낍니다.

전철 안에서는 또 종종 괴이한 외침도 듣게 됩니다. '예수 믿으라'는 소리지요. '믿음 천국, 불신 지옥'이라고 쓴 어깨띠를 두르거나 팻말을 들고 고성을 지르는 사람도 보게 되는데, 그때는 심한 공포감 때문에 일시적으로 호흡곤란을 겪게 됩니다. 공포증 발작이랄까, 그런 것을 느끼는 거지요.

언젠가 한 번은 집에서 작업에 몰두하고 있을 때 누군가의 방문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서 문을 열어보니 둘씩 다니는 사람들의 방문이었습니다. 어이없고 화가 나면서도 그 순간 절로 몸이 움츠러드는 공포를 느꼈습니다. 강한 공포감 때문에 아무 말도 못하고 애써 문 밖으로 나간 다음 그 사람들에게 우리 집 문 위에 부착된 표식을 가리켜 보였습니다.

내 종교를 알리는 표식을 보고서도(이미 그것을 뻔히 보면서도 벨을 눌렀을 테지만) 그들 두 중년 여성은 이내 발길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가시지 않는 공포감 속에서 간신히 한마디를 했습니다.

"문맹이신 분들은 아니실 테니까, 내 종교를 알리는 이 표식을 보았을 겁니다. 그럼, 그냥 돌아가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요? 우리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며 종교 활동을 합시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나는 안으로 들면서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그리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지요. 절로 한숨이 나오더군요.

며칠 후에도 또 그런 일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이를 업은 삼십대 여성 혼자였습니다. 둘씩 다니는 쪽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면서, 둘씩 다니는 쪽이 아닌 교회에서도 이런 식의 선교를 하기로 나선 건가, 라는 생각에 다시 와락 공포감이 들더군요.

예외 없는 공포감 속에서도 나는 어린아이를 들쳐업고 다니는 그 여성이 일면 애처롭게도 보여서 인상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고는 거실로 들어와서 책 한 권을 들고 다시 나갔습니다.

나는 그 여성에게도 우리 집 문 위에 부착된 내 종교를 알리는 표식을 가리켜 보인 다음 부드러운 소리로 말했습니다.

"앞으로는 기본적인 예의를 좀 지키면서 종교 활동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 책은 최근에 펴낸 내 신앙문집인데요, 이 책을 한번 읽어보세요. 이 책을 한번 읽어보신 다음에 다시 한번 우리 집에 오십시오. 그때는 제가 정중히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그 여성은 책을 받아들고 이내 돌아갔는데, 달포 가량 지난 오늘까지도 다시 우리 집을 찾지 않고 있습니다. 내 책을 읽어서 오지 않는 것인지, 아직 읽지 않아서 오지 않는 것인지….

김정일 위원장의 사진이 비에 젖자 울던 북한 미녀응원단

내 친지들 중에는 얼마 전에 개신교 신앙생활을 접은 이가 한 명 있는데, 신앙을 버린 이유가 좀 특이합니다. 목사님이 설교 중에 가끔 타 종교를 비방하는 말을 하는 것이 첫째 이유고, 수많은 신자들이 하나같이 목사님의 타 종교 비방을 그대로 수용하는 '집단최면' 현상이 둘째 이유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의 타 종교 비방도 문제지만 그것을 그대로 수용하는 신자들의 집단최면 현상에 질식할 것 같은 절망감을 느껴 견딜 수가 없었다는 거였지요. 그 친지 분의 말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예전에 목격했던 한 개신교의 부흥집회와 모든 신자들의 통성기도 장면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리고 묘한 공포감을 다시 안으며 절로 곱송그려지는 나를 느끼곤 하지요.

2003년 대구에서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열렸을 때 북한도 선수단을 보냈지요. 그때 선수단과 함께 온 대규모 미녀 응원단의 응원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한 번은 경기 기간 중에 비가 내렸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얼굴과 이름이 새겨진 거리 현수막이 비에 젖게 되자 북한 미녀응원단원들이 울며불며 현수막을 철거하는 소동이 벌어졌지요. 그들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장군님'의 사진과 이름이 비에 젖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고 그런 행동을 했던 거지요.

그때도 나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감 속에서 호흡곤란을 느꼈습니다. 정말 절로 아득해지고 암담해지는 절망이요 공포였지요.

그런데 나는 북한 사람들이나 남한 사람들이나 마찬가지인, 우리 민족의 심성 안에 깊이 내재해 있는 광신(狂信)이나 집단최면 현상 같은 것을 거기에서도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북한 사람들의 집단최면 현상에 공포를 느끼는 한편으로 남한의 곳곳에서 벌어지는 집단최면 현상에도 질식할 것 같은 공포를 느끼는 거지요.

북한의 권력 세습과 한국 개신교 대형 교회들에서 이루어지는 목회자 세습이 어떻게 다른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게 다 광신과 집단최면 때문에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다시금 절로 공포감을 갖게 됩니다. 우리 민족은 천부적으로 광신에 잘 빠져들고 집단최면에 약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심증은 그대로 공포증으로 전이되어 버리는 거지요.

왜 '믿습니다'가 아니라 '믿슙니다'일까

나는 예전에 들었던 개신교 목사님의 장황한 기도, '믿습니다'를 유난스럽게 '믿슙니다'로 계속 발음하던 기도를 지금도 종종 떠올립니다. 놀랍게도 많은 목사님들이 '믿습니다'를 '믿슙니다'로 발음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믿슙니다'라고 발음하는 기도를 간혹 듣거나 다시 떠올리게 되면 몸이 절로 비틀어지는 듯한 공포를 느낍니다.

자신의 믿음을 좀더 강력하고 열렬하게 고백하고 표현하기 위해서(또는 믿음 자체가 너무도 강하고 열렬하기에) 그렇게 말을 비틀어대는 식의 발음을 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만, 그것은 내게 너무 거칠고 사나운 음조로 들립니다. 투쟁의지 같은 것도 발현되는 게 아닌가 싶고, 어쩌면 순수한 믿음이 아니기에 저런 왜곡된 발음이 쉽게 나올 수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런 생각들 때문에 '믿슙니다'라는 발음에서 더욱 공포를 느낍니다.

언젠가 한 개신교 신자 친구로부터 "왜 천주교는 하나이신 하나님을 하나님이라 부르지 않고 하느님으로 부르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럼,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에서도 '하나님'이라고 하나요?"라고 반문하며 웃은 적이 있는데, '하나님'이라는 발음에 집착하는 관습도 타 종교 비방의 한가지 동인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나는 최근 <오마이뉴스>에서 놀라운 동영상을 하나 보았습니다. '경남지역 기독교청년대회'라는 대규모 행사에서 사회를 맡은 젊은 목회자의 금속성에 가까운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온 몸이 굳는 듯한 공포를 느꼈습니다. (2006년 6월 4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부산, 경남지역 기독교 연합 모임 행사 지칭)

그는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라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타 종교의 '멸망'을 청원하는 기도를 계속적으로 해대고 있었습니다. 경남의 각 군 단위 고장에 있는 불교 사찰들의 수를 입에 올리면서 '무너지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를 성능 좋은 확성기로 힘차게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00군에 있는 000개 성교회 성도들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00군내 000개 사찰을 무너지게 해주시옵소서!"

그의 그런 기도가 울려 퍼질 때마다 체육관인 듯한 장소의 운동장이며 스탠드를 가득 메운 청년 신도들은 하나같이 격렬한 율동으로 호응을 하곤 했습니다. 완전히 광란이더군요.

"저것도 기도이고, 저것도 종교 집단일까? 저 안에 과연 예수님이 함께 하실 수 있을까?"

나는 길게 탄식하며 다시금 질식할 것 같은 공포감으로 몸을 떨었습니다. 광신과 집단최면 현상의 실체를 두 눈과 두 귀로 접하며 아득해지는 절망감 속에서도 "하느님, 저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지금 자신들이 하는 짓을 모르오니, 저들을 당신 자비로 깨우쳐 주소서"라는 기도를 해야 했습니다.


2008.09.25 16:18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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