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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복음 맛 들이기 - 연중 제 26 주일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28 조회수713 추천수8 반대(0) 신고

 

 

 

                                    연중 제 26 주일 - 믿음만으로?

 

                                                                                                               < 마태오 21, 28-32 >

 

 

어떤 자매님이 큰 결심으로 저에게 당신이 미워하는 몇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사람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저에게 어떤 말을 기대하였는지는 몰라도 저는 용서를 하지 않으면 우리 죄도 용서를 받지 못하고 게다가 미워하면 나만 괴로운데 왜 용서를 하지 않느냐고 차근차근 설명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신부님은 제 마음만 더 복잡하게 만드시고 있어요.”

사실 이 자매님은 처음부터 용서할 마음이 없으셨던 것입니다.

받아들일 마음이 없다면 그 사람에게는 무슨 이야기를 해 주어도 소용없습니다. 어떤 말이든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이면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형제님은 고해성사를 보면서 저에게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라는 말은 당신은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선 돈이 있고 먹고 살아야 행복이고 뭐고 있는 거지 가난한데 무슨 행복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 분은 주일에 골프 치느라 미사를 빠진 분이었습니다. 돈은 있어 보이셨으나 행복해보이지는 않으셨습니다. 많은 불만을 지니고 계신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신앙생활을 한다고는 하나 진정한 신앙인을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진정한 신앙인이란 진정한 믿음을 지닌 사람입니다. 진정한 믿음을 지닌 사람이란 그 믿음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지 않는 이런 사람들을 두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에서 두 아들이 나옵니다. 첫째 아들은 아버지께 밭에 가서 일한다고 하고 실제로는 가지 않았고 둘째 아들은 안 간다고 했다가 갔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을 빗대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유다인들이 첫째 아들이고 처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느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 말씀을 믿고 따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명목적으로는 하느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이방인들이나 죄인들은 처음에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결국은 회개하여 믿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자극이 되도록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이들이 둘째 아들을 의미하는데 처음엔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결국 마음을 바꾸어 말씀대로 살려고 했던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이 실질적으로 하느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도 정확하게 이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 이스가리옷과 세리였다가 주님의 사도가 된 마태오가 그런 경우입니다.

유다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만큼 그리스도를 믿고 따랐지만 실제로는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도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많은 것들을 믿을 수 없었고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결국은 스승을 배반하고 맙니다.

세례는 받았지만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믿고 그대로 살지 않는다면 결국 유다처럼 예상외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돈만 밝히던 죄인이었던 마태오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릅니다. 이렇게 그의 삶은 백팔십도 바뀌어 하느님께 가장 사랑받는 사도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바로 둘째 아들의 모습입니다. 처음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결국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라고 하신 이유는 ‘먼저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믿음도 생기지 않는다.’ 즉, ‘믿으려면 먼저 회개의 삶을 살겠다는 결심부터 해라.’라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따라서 믿는다는 말 안에는 이미 그 믿음대로 살겠다는 결심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과 삶이 별개가 아니란 뜻입니다. 그래서 삶으로 실천되지 않는 믿음은 거짓이고 허상입니다.

  처음에 제가 말씀드린  두 신자 분들은 사실 믿는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하느님께서 볼 때는 아직 믿음에 도달한 분들이 아닙니다. 세례만 받았다고 믿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참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이전에 세례자 요한이 먼저 온 이유가 있습니다.

“회개하여라. 주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나라 자체이신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에 미리 회개하도록 사람들을 이끌었습니다. 회개의 삶을 살기를 원하는 이들이어야만 그리스도를 올바로 받아들이고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내가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믿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결심을 했는지 미리 성찰하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간디도 한 때 그리스도의 사상에 심취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에 너무나 매료되어 자신의 종교를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심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큰마음을 먹고 미사에 갔습니다.

그런데 성당 앞에 있는 사람들이 간디를 못 들어오게 막았습니다. 이 미사는 백인들을 위한 미사이고 유색인종이 하는 미사가 따로 있으니 그 때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간디는 크게 실망하였습니다. 자신이 아는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삶이 크게 차이가 났기 때문입니다.

간디는 그 이후로 어떤 종교이냐 보다는 어떤 종교를 믿든 가르침대로 실천하는 게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느끼고 다시는 그리스도교로 마음을 돌리지 않기로 결심을 합니다.

정말이지 믿는다고 하면서 제대로 살지 못한다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이고 오히려 교회에 해를 끼치기도 합니다.

  특히 개신교에서 ‘믿음만으로’란 기치를 내걸고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믿음을 배제하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얼마 전 어떤 유명한 목사님이 ‘불교가 들어간 나라치고 잘 사는 나라가 없다.’라고 하기도 했고 ‘미국이 잘 사는 이유는 1달러짜리에 God가 쓰여 있어서 그렇다.’라는 식으로 설교를 하여 물의를 일으킨 일이 있었습니다.

또 어떤 목사님의 동영상이 유명했었는데 끊임없이 자신이 사는 지역의 사찰이 다 무너지게 해 달라는 청원기도를 바치고 신자들도 아멘으로 응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조사에 의하면 개신교도의 범죄율과 불교도들의 범죄율이 거의 같게 나왔습니다. 물론 실천을 강조하는 가톨릭의 범죄율은 비교적 매우 적습니다. 믿음만 강조하고 실천은 잊어버리면 이런 큰아들의 모습이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혹시 우리들도 세례는 받았지만 실제적으로는 주님의 가르침을 취사선택하여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겠습니다. 온전히 믿어서 아는 것을 삶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야 참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말로만 ‘주님, 주님!’ 하는 큰 아들과 같은 명목상 신자가 아니라 믿는 것을 삶으로 옮기는 작은 아들 같은 참다운 신자가 되도록 합시다.

 

 

 

                 ☆ 로마에 유학 중이신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복음 묵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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