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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매력 있는 사람들" - 9.28,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28 조회수637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8.9.28 연중 제26주일                                              
에제18,25-28 필리2,1-11 마태21,28-32

                                                    
 
 
"매력 있는 사람들"
 


늘 적절한 긴장 중에
균형을 유지하며 사는 절제의 사람들이 매력적입니다.

삶에 적절한 긴장을 잃어
균형이 깨져 무너져 내린 모습들 매력이 없습니다.

균형과 절제의 아름다움이요,
이런 균형과 절제는 하느님을 찾는 적절한 긴장에서 옵니다.
 
며칠 전 읽은 어느 미국 수도원의 아빠스님 글, 한 대목을 인용합니다.

“유럽에서 수도승생활은 죽어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양길에 접어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수도승생활은 성장하고 있다.
  아마 미래에 수도승생활은
  유럽이나 미국 밖에서 더 왕성해질 것이다....  
  너무나 편안한(too easy) 삶의 길을 선택했기에
  유럽에서의 수도승생활이 죽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 죽어가는 순간에도
  더욱 전통적이고 강한(a more traditional and stronger)
  수도승 삶의 길을 선택한 수도원들은
  그나마 성소자들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편안한 삶으로 적절한 긴장을 잃어 균형이 깨지면
수도승 삶이든 박에서의 삶이든
삶은 탄력을 잃어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마련입니다.
 
더불어 대화 중 어느 수사님의 두 말이 새삼스런 깨달음이었습니다.

“수도원도 매력이 있어야 성소자들이 있습니다.”

너무나 잊고 지낸 ‘매력’이란 단어였습니다.
 
수도원뿐 아니라 사람도 저절로 끌리는 매력이 있어야
사람도 붙기 마련입니다.
 
대화도중 다음 한마디 말 역시 잊혀 지지 않습니다.

“수도공동생활은 어렵습니다.
  어렵더라도 그냥 묵묵히 견디며 살아가는 이들이 정말 소중합니다.”
라는 요지의 말이었습니다.
 
그 기나긴 세월을 머리로, 재주로, 지식으로, 말로, 마음으로
항구하게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을 믿음으로 그냥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진정 매력 있는 사람들임을 깨닫습니다.
 
밖으로 보면 그저 평범해 보이는 삶일지라도
내적으로는 적절한 긴장과 균형이 있기에 가능한 삶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매력적입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산 같기도 하고
땅속 깊이 뿌리 내린 나무들 같기도 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의 정주서원,
그대로 항구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산 같이, 깊이뿌린 나무들 같이,
항구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여기 수도자들입니다.
 
이런 믿음은 하느님을 찾는 열정으로 표출되기 마련입니다.
 
끊임없이 하느님을 찾는 역동적인 믿음입니다.
 
이런 면에서 복음의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불합격이었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합격입니다.
 
기존의 관념을 뒤 엎는 다음 예수님의 폭탄선언이 이를 입증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실로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배부르고 등 따듯하면 도 닦기 힘들다 했습니다.
배고픈 사람이 밥을 찾고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습니다.
 
모든 것이 보장된 수석사제들과 원로들의 종교귀족들,
결코 하느님이 배고파, 목말라 하느님을 찾는
역동적 믿음을 지닐 수는 없습니다.
 
있다면 액세서리 장식품 믿음이었을 것입니다.

반면 내외적으로 결핍된 소외 계층이자
경멸과 무시의 대상이었던 세리와 창녀들,
참으로 하느님을 배고파하고 목말라 했을 것입니다.
 
진정 간절하고 절실한 믿음이었을 것입니다.
 
삶이 그대로 믿음이었을 것입니다.
 
겉이 아닌 속마음을, 믿음을 보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니 이런 마음 가난한 세리와 창녀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입장은 사필귀정입니다.
 
주님의 마지막 말씀에서 세리와 창녀들이
하느님 나라의 입장을 가능하게 한 것은 믿음임이 분명히 들어납니다.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믿지도 않았다.”

믿음의 사람들, 진정 매력 있는 사람들입니다.

끊임없는 회개의 사람들이 매력적입니다.

끊임없이 생각과 마음을 바꾸는 것이,
잘못된 행동을 삶을 바꾸는 회개의 수행입니다.
 
바로 우리 베네딕도회 수도승들의 두 번째 서원,
‘수도승다운 생활’이 여기에 속합니다.
 
평생, 매일, 끊임없는 내적쇄신과 회개의 수행입니다.
 
이래야 한 곳에 정주해도
웅덩이에 고인 썩은 물이 아닌
하느님 향해 흐르는 맑은 강물로 살 수 있습니다.
 
완고한 수석사제들과 원로들에게
주님께서 지적하시는 바도 바로 회개입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그를 믿지도 않았다.”

주변의 모두가, 사람이든 사물이든
생각을, 마음을 바꾸라는 하느님 주신 회개의 표지일 수 있습니다.
 
완고한 이기적 마음을,
하느님 중심의 마음으로 바꾸는 게 회개입니다.
 
회개의 사람들,
다음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 공감하여 그대로 실행할 것입니다.

“무슨 일에나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십시오.”

끊임없는 회개를 통해
이기심과 허영심의 환상이 걷힐 때
남의 필요에 자기를 맞추며 투명한 겸손의 현실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우리 안에 지니게 됩니다.
 
에제키엘 예언자 역시 회개가 생명의 길임을 강력히 천명하십니다.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악을 생각하고 그 죄악에서 돌아서면,
  그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과거를 불문에 붙이시고
회개의 열매인 지금 여기에서의
공정과 정의의 삶을 보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지금 여기에서의 삶만이 판단의 잣대입니다.
제 아무리 의인이라 하더라도
자기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면,
그것 때문에 죽을 것입니다.
 
자기가 저지른 불의 때문에 죽을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는 일체의 기득권이나 허용되지 않습니다.
 
늘 끊임없는 회개로 지금 여기서 깨어 새롭게 사는 것이 제일입니다.
이런 이들에게는 매일이 새 하늘, 새 땅입니다.
 
진정 매력적인 회개의 사람들입니다.

순종의 사람들이 매력적입니다.

공동체 생활은 순종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얼마 못가 공중 분해됩니다.

얼마 전의 깨달음이 생각됩니다.
 
배 밭을 돌 던 중, 크고 잘 새긴 배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병도 들지 않고 까치도 쪼지 않고
아무리 봐도 떨어질 배가 아니었습니다.
 
배를 들고 사정을 잘 아는 농장 수사님에게 물었을 때
대답 역시 신선함 깨달음이었습니다.

“딸 때가 됐군요.”

잘 익어 때가 되어 저절로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순간 깨달은 것이 순종입니다.

때가 되어 잘 익어 저절로 떨어지듯, 순종의 열매도 그러합니다.
 
덜 익은 봄, 여름의 열매들 아무리 당겨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가을의 때가 되어 익어야 배 열매들 잘 떨어지듯,
우리 역시 겸손으로 성숙되어 익어갈 때
비로소 잘 익은 순종의 열매입니다.
 
과연 내 순종의 열매는 잘 익어가고 있는지요.
영적 성숙의 잣대, 바로 순종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포도밭에서 일한 두 아들 중 맏아들이 순종의 모범입니다.

아버지로부터 포도밭에 일할 것을 명령 받자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갑니다.
 
생각을 바꾸는 회개가 즉시 순종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오늘 2독서의 필리피 찬가는 늘 읽어도 감동입니다.
예수님의 겸손과 순종이 정말 아름답고 매력적입니다.
 
하느님 향한 사랑의 열매가 겸손과 순종입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에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겸손과 순종이 하나로 녹아있음을 봅니다.
 
우리의 영성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겸손과 순종의 영성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느님은 이런 순종의 예수님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하여 우리는 이 은혜로운 미사시간에
모두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고 있습니다.
 
순종의 사람들, 참 아름답고 매력적입니다.


저절로 균형과 절제의 매력적인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끊임없이 믿음의 사람들, 회개의 사람들, 순종의 사람들로 살아갈 때
진정 매력적인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사는 이들 많아질 때
교회도, 수도원도 사람들로 넘칠 것입니다.
 
매일 성체성사의 은총이
우리를 이런 매력적인 사람들로 변모시켜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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