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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려워 봐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작성자유웅열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01 조회수593 추천수3 반대(0) 신고
 

어려워 봐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광야는 우선순위를 보는 장소)


왜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로 돌아가라고 호소하는가?

또 왜 초대 그리스도 교회의 ‘사막의 교부’라 불리는 많은 구도자들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구도생활을 하지 않고 생의 조건이 철저히

결여된 광야로 간 것일까?


사실 예수께서도 자주 광야에 나가 기도하셨다.

공생활 시작 전에도 광야에서 40일간 기도하셨고, 첫 사도직을

행하신 날도 새벽녘 광야에 나아가 기도하셨고, 열두 제자들을

뽑기 전에도 광야에 나아가 기도하셨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광야는 생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의 조건이 결여된 광야에 섰을 때 자기가

그 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결국 모든 것이 하느님께 의존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느님께서 야곱의 후손들을 광야로 이끄신 것은 그들에게 생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였다. 하느님이 생의

근본임을 몸으로 철저히 체득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생의 기본 조건이 철저히 말살된 광야에서 야곱의 후손들이 살아

남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느님뿐이었다. 광야라는

환경의 악조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하느님만을 의지해야했다.


광야에서 목이 탈 때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외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창자가 오그라드는 것 같았을 때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

의 얼굴을 바라보고 애원하는 것뿐이었다.


하느님이 야곱의 후손들을 자유의 땅으로 인도하기 전에 광야 길로

내몬 것은 그들을 양성시키기 위해서였다. 진실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었다. 광야의 악조건을 통하여 인간 생의 우선순위가 하느님뿐

이라는 진리를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었다.


야곱의 후손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한 인간적인 계획이 전혀 통하지

않는 광야에서는 하느님 섭리에 온전히 의존하면서 살아야하는 것이

인생임을 교육받는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

. . .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마태 6, 31-32)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 아버지께 우선순위를 두면서 살아갈 때

그분께서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들을 미리 헤아려 돌보아 주신다는

가르침을 광야에서 배운 것이다.


우리가 깊은 고통 중에 궁극적으로 만나게 되는 분은 하느님이요,

선택하게 되는 것은 신앙이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 때문에 속을 태운다. 아이들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다. 이미 말했듯이 인생이 힘겨운 것은

만사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녀를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면 할수록 절망과 고통은 커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고통을 겪는 중에 깨닫게 되는 것은 ‘자녀가 더 이상

자기 자녀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라는 진리이다. 하느님만이 자기 아이의

참 보호자란 것을 깨닫게 된다. 비록 자신이 자녀들을 낳고 기르긴 했지만

자기의 소유가 아님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어도 부모의 생각까지 줄 수는 없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육체를 줄 수 있으나 영혼을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우선순위를 깨닫게 될 때 비로소 부모는 자녀를 놓을 수 있게 된다.


자식을 쫓아가지 말고 가만히 제자리에 서서 기다려 보라. 가다리고 있노라면

멀어져 갔던 자식은 부모가 서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생의 광야를 부정적으로 본다. 하지만 광야는 우리 영혼에게

참으로 귀한 것이다. 광야는 우리 생에서 가장 귀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보물과 같은 것이다.


이 세상이 광야임을 깨달아야 한다. 인생이 광야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덜

중요한 것을 포기할 수 있다. 덧없는 것에서 손을 놓을 수 있다. 인간관계가

중요한 사람, 명예가 중요한 사람, 자식이 중요한 사람, 자리가 중요한 사람,

이런 사람들은 그 중요하다는 것 때문에 짧고 귀한 생을 힘들게 살아가다

마음의 고통이 극에 달할 때야 생의 우선순위를 깨닫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광야는 우리 영혼에게 귀한 것이요, 해방을 위한 ‘초대’이다.

야곱의 후손들이 하느님을 우서순위로 택하고 그분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광야로 초대됐듯이 우리도 허망한 것들을 다 떼어버리고 가장 중요한 것을

선택하라고 광야에 초대되었다. 하느님의 가치 세계를 선택하라고 광야로

초대되었다. 

                                          송 봉 모 신부 지음.

오늘의 묵상:

인간이 본래 선(善)한 것인가 아니면 악(惡)한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보면,

“사람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이다.”(창세8,21)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악이 세상에 많아지고, 그들 마음의 모든 생각과 뜻이

언제나 악하기만 한 것을 보시고, 세상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창세 6,5-6)


이처럼 사람의 마음이 본래 악하기 때문에 자기가 악한 것을 깨닫게 하려면

생의 조건이 더욱 악한 조건에 부닥쳐야 그 악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고 척박한 땅, 광야의 생활을 거치게 하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다.


애지중지 키워온 자식들이 부모의 뜻을 저버리는 것은 인간이 악하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그 자식들을 끼고 있으려고 하면 할수록

그 자식들은 더욱 몸부림치면서 부모의 그늘에서 멀어져가려고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내 자식만은 결코 그럴 수는 없지 하고 장담할 사람이 없다.


자식들을 키우고 나면 미련 없이 놓아주어야 한다. 그들은 내 자식들이 아니다.

‘자식들은 오로지 하느님의 자식들이다. 내 영역에서 벗어 나 그들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 그들이 부모의 뜻을 따르고 안 따르는 것은 그들의 자유이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자식들을 홀가분하게 내 버릴 때 그들이 부모를 그리워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우선순위를 가리면서 자신을 돌보고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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