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낮춤은 = 나눔 ....... [김상조 신부님]
작성자김광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01 조회수593 추천수6 반대(0) 신고
 
 
우리 나라 무속신앙에는 많은 신들이 나온다.
그 가운데 성주신과 용신이 있는데
둘 다 집안의 우환을 막아준다고 믿어,
대청마루나 대들보 밑에 성주단지와 용신단지를 모시고
그 속에 주로 쌀을 담아 바쳤다고 한다.
그러다가 이웃집에 누가 굶고 있거나 나그네가 오면
이 단지에 든 쌀로 밥을 지어주곤 했다.
먹을 것이 없던 그 시절에
목숨과 같은 비상식량을 그렇게 사용했었다니,
보통 나눔의 정신이 아닌 듯 한다.
한 때 한국사람들이 개고기를 먹는다고 야만인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신부님들이 개고기를 먹을 줄 안다.
나도 신학교에 입학한 다음부터 개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개고기도 못 먹으면 신부될 자격이 없다는 선배들의 반농담의 엄포가 있기도 했지만,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먹어! 그럼 개가 사람이 되는 거야!”
그 때 그것 참 말이 된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실 우리 몸엔 온갖 것이 들어 와 있다.
공기로 숨을 쉬고, 물을 마시고, 온갖 동식물을 음식으로 먹고 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대자연이 내 몸 속에서 함께 살고 있다.
그 때문에 예수님은 “이 사람들 속에 내가 있고
내 속에 아버지께서 계신다”는 말씀을 하셨나 보다.
매일미사 때마다 우리는 그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아니, 예수님은 우리와 한 몸이 되신다.
예수님이 원하신 한 몸을 당신은 이렇게 실현하셨다.
각자 개성 있고 고집 있고 한 성격 하는 사람들이 하나되는 방법은
결국 예수님처럼 각자가 각자를 위한 음식이 되어주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예수님은 우리와 완전하게 하나가 되셨다.
그것은 단순하게 되어주는 척 하는 것도 아니고,
일시적으로 시늉만 내는 것도 아니고,
일 부분만 그렇게 되어 주는 것도 아니다.
온전하게 하나 되어준 것이다.
예수님은 강생 때부터 그러하셨다.
하늘 높이 계시기만 해서
사람들이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분이 아니라
땅으로 내려오셔서 사람이 되셨고,
천군만마의 귀한 왕자가 아니라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 되셨고,
결국에는 모든 사람이 비난해 마지 않는
죄수들과 함께 못박히는 사람이 되셨다.
되어 주는 척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되셨다.
개를 잡아먹는 우리네 음식문화가
외국인이 보기엔 야만인처럼 보이겠지만
우리 나라는 예로부터 자연과 동물을 아끼고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민족이었다.
그야 말로 문화일 뿐이다.
사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인들 못먹을까!
우리네 옛 조상들은 가족들 중에 누가 먼길을 떠나면
그날부터 끼니 때마다 밥을 한 그릇씩 따로 떠놓았다가
우연히 찾아오는 나그네를 대접해 주었다.
아무리 가난해도 먼길 가는 나그네를 박대하지 않고
재워주고 한 식구처럼 대접해 주었다.
들판에서 새참을 먹다가도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큰 소리로 불러서 같이 먹었다.
제사 지낸 음식도 절대로 혼자 먹지 않고 이웃과 나누어 먹었고,
새와 짐승들 먹이로 남겨 주었다.
남을 남으로 여기지 않고 내 부모, 형제 같이 여겼고,
짐승들도 사람과 한 식구로 여겨서 함부로 살생하지 않았다.
개고기는 가난한 민중들이 마지막으로 구할 수 있는 최후의 먹거리였다.
먹지 못하면 죽고 말 듯이,
우리 조상들이 서로 서로 먹을 것을 내어주는 것은
자기 살을 내어주는 것과 같다.
그것은 스스로를 낮추어
상대방과 나를 같게 여기지 않으면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나가는 나그네를 먼길 떠난 식구처럼 여기고,
산에서 내려오는 짐승을 가축처럼 여기며 내쫓지 않는 것은
마음을 비우고 자기를 낮추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어리석게도 자기 스스로 자기를 상석에 앉혀 놓았기 때문에 함께 하기 어렵고,
공연히 체면만 차리면서 더욱 더 멀어지게 만든 것은
스스로는 야만인이 아니라고 만든 그네들 탓이다.
마음을 비우고 자기를 낮추어 내어줌으로써
나는 상대방이 되고 그는 내가 될 수 있다.
개고기를 먹어서 그 고기가 사람의 살과 피가 되는 것처럼,
우리 스스로도 서로에게 먹거리가 되어주는 삶을 산다면
나는 그 사람이 되고 그 사람은 내가 될 것이다.
그것이 어린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모습이다.
오늘 기념하는 데레사 성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되고 싶다는 원의를 가졌다고 한다.
성녀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죄에 떨어진 인간을 다시 일으켜 주시는 분만이 아니었다.
죄에 떨어지지 않도록 미리 막아 주시는 자비로운 분이었다.
자서전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성녀 막달레나 보다도 저를 더 많이 사랑해 주신 것도 압니다.
저를 미리 용서해 주셔서 제가 죄에 떨어지는 것을 막아 주셨으니까요”
모든 사람이 죄짓고 사는데 나라고 그런 죄에 떨어지지 않을쏘냐 하면서
자기 자신이 죄에 떨어지는 것에 대해 너무나 관대한 우리 자신에게 커다란 교훈을 주는 태도다.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은 어린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