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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간 시련과 하느님 원망 [고통과 하느님의 정의/욥기]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01 조회수1,026 추천수0 반대(0) 신고
 
[ 욥 기 1 장 ] 하루는 '하느님의 아들들' (가톨릭대사전 - 천사)이 모여 와 주님 앞에 섰다. 사탄도 그들과 함께 왔다. 주님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 욥을 눈여겨보았느냐? 그와 같이 흠 없고 올곧으며 하느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은 땅 위에 다시 없다.” 이에 사탄이 주님께 대답하였다. “욥이 까닭 없이 하느님을 경외하겠습니까? 당신께서 몸소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를 사방으로 울타리 쳐 주지 않으셨습니까? 그의 손이 하는 일에 복을 내리셔서, 그의 재산이 땅 위에 넘쳐 나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당신께서 손을 펴시어 그의 모든 소유를 쳐 보십시오. 그는 틀림없이 당신을 눈앞에서 저주할 것입니다.” (간략 : 온갖 불행이 닥쳐왔다) ... 그러자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를 깎았다. 그리고 땅에 엎드려 말하였다.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나온 이 몸 알몸으로 그리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이 모든 일을 당하고도 욥은 죄를 짓지 않고 하느님께 부당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 욥 기 2 장 ] 주님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 욥을 눈여겨보았느냐? 그와 같이 흠 없고 올곧으며 하느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은 땅 위에 다시 없다. 그는 아직도 자기의 흠 없는 마음을 굳게 지키고 있다. 너는 까닭 없이 그를 파멸시키도록 나를 부추긴 것이다.” 이에 사탄이 주님께 대답하였다. “가죽은 가죽으로! 사람이란 제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소유를 내놓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당신께서 손을 펴시어 그의 뼈와 그의 살을 쳐 보십시오. 그는 틀림없이 당신을 눈앞에서 저주할 것입니다.” 사탄은 주님 앞에서 물러 나와, 욥을 발바닥에서 머리 꼭대기까지 고약한 부스럼으로 쳤다. 욥은 질그릇 조각으로 제 몸을 긁으며 잿더미 속에 앉아 있었다. 그의 아내가 그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아직도 당신의 그 흠 없는 마음을 굳게 지키려 하나요? 하느님을 저주하고 죽어 버려요.” 그러자 욥이 그 여자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미련한 여자들처럼 말하는구려.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좋은 것을 받는다면, 나쁜 것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소?” 이 모든 일을 당하고도 욥은 제 입술로 죄를 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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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뉴스, 욥기 ㅡ 성서해설 >
 
 
욥기라는 독창적인 견해를 남긴 저자는 의인들이 고통을 당해야 하는 문제에 대해 전통적인 해결책이 아닌 새로운 견해를 집요하게 추구했던, 유난히 고통과 하느님의 정의에 민감했던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욥기는 고통에 관해 묻고 도전하고 항의하는 책입니다. 전통적으로 고통은 상선벌악 개념에 따라 이해되었습니다. 악한 자가 받는 벌이 곧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보상적 정의를 가리키는 이 말이 전적으로 틀리지는 않지만 고통의 모든 문제를 해명해 주지도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선한 의인들이 당하는 고통은 적잖았으니깐 말입니다.
 
욥기는 하느님의 정의와 함께 인간의 삶의 목적과 의미에 대한 궁극적인 물음입니다. 욥기의 끝에 가서도 욥이 제기한 물음, 곧 고통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습니다. 의인이 당하는 고통은 인간 삶과 연관된 하나의 신비입니다. 문제는 그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입니다. 고통을 비롯한 모든 것이 시간 안에서 사라져 갑니다. 궁극적으로 그 문제의 답을 얻을 곳은 영원하신 하느님 창조주 그분 안에서 입니다. 결국 남은 답은 하느님께 대한 신뢰뿐입니다. 욥은 하느님의 놀라우신 현존을 체험하고 그분께 승복합니다. 신약시대에 와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이 바로 그에 대한 결정적인 증언입니다.
 

욥과 친구들의 첫번째 대화 : 그 당시 주변세계의 지혜를 대표하는 친구 중에서 엘리바즈는 “재난은 사람이 스스로 빚어 내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욥이 잘못한 것이 있어서 재앙을 자초한 것이니까 어서 잘못을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빌닷 역시 하느님께서 욥에게 “죄값을 물으신 것이 분명하”다고 말합니다. 소바르는 “악에서 손을 떼고” 나서면 하느님께서 다시 돌보아 주실 것이라고 밝힙니다. 그러나 욥은 그 말에 위로받지 못하고 자신의 무죄를 계속 고집합니다.

욥과 친구들의 두 번째 대화 : 욥의 세 친구는 자신의 무죄함을 주장하는 욥을 비난합니다. “여인에게서 난 사람이 어찌 죄없을 수 있겠는가?”(엘리바즈).“악인의 빛은 결국 꺼지고”(빌닷) “악인의 웃음소리란 금방 멎는 것”(소바르)이라며 욥을 윽박지릅니다. 사실 하느님 앞에서 온전히 흠없는 자가 어디 있으리오마는, 그들의 잘못한 정도에 따라 앞날이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은 현실과 역사의 체험입니다. 자신이 그 경우를 당하고 있는 욥은 답답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변호인으로 하느님을 요청합니다.

욥과 친구들의 세 번째 대화와 지혜의 글 : 욥과 친구들의 세 번째 대화는 이미 나와 있는 각자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이라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다만 과부와 고아처럼 어려운 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요구가 한층 강조되고 있는 것이 눈에 띕니다.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참된 지혜라고 밝힙니다.

욥의 마지막 고백과 선서 : 욥의 친구들이 주장하는 인과응보는 오늘날 우리들 주변에서도 흔히 거론되는 가르침입니다. 세 친구들과의 대화가 헛된 공방전임을 깨달은 욥은 자신의 과거 모습과 현재 처지를 비교하면서 울부짖은 뒤, 자신의 결백을 선서합니다. 욥은 자신이 하느님과 이웃에게 잘못한 것이 없다고 구체적으로 밝힌 다음 전능하신 분의 답변을 듣겠다고 마지막 말을 던집니다.

엘리후의 변론 : 욥의 최종 고백에 이어 갑자기 엘리후라는 젊은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가 마지막 맺음말에 언급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 부분은 후대에 덧붙인 대목이라고 여겨집니다. 엘리후가 변호하는 하느님의 모습 역시 앞의 세 친구처럼, 전형적인 인과응보형입니다. 다만 하느님께서 고통을 통해 사람을 구하시고 교육시키신다는 내용을 좀더 충실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나타나신 하느님 : 드디어 욥기의 절정에 이릅니다. 욥과 세 친구들이 고대해 마지 않던 하느님께서 폭풍 속에서 나타나시어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그분은 어느 한 편을 옹호하거나 비난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뜻대로 창조하신 자연세계의 각종 현상을 예로 들어 당신이 누구시며 어떻게 일하고 계신지를 밝히십니다. 인간의 온갖 지식으로서도 이 모든 현상의 원인을 깨닫고 해결책을 제시할 수가 없음을 느끼게 하여, 피조물인 인간 본연의 자세와 한계를 깨닫게 하십니다.
 
끝 마무리 : 어찌 보면 욥기의 끝마무리는 싱겁습니다. 도대체 치열한 논란이 되었던 '고난의 의미'에 대해 딱부러지는 답변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욥은 하느님 체험과 그분께 대한 믿음 안에서 '그 문제' (고통의 의미)를 끌어안게 되었습니다. 욥기는 행복한 결말로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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