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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광야의 속성은 양면을 갖고 있다.
작성자유웅열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02 조회수618 추천수2 반대(0) 신고
 

광야의 속성은 양면을 갖고 있다.

(광야는 두 얼굴의 장소이다.)


광야는 우리가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요, 생의 우선순위를 보게 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즉 광야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돌보심을 받기도 하고,

하느님께 반항하기도 한다. 또한 하느님의 시험을 받거나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유혹을 받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해방에 이르게 되는가?


광야란 생의 조건이 결여되어 아무도 살 수 없는 곳이다.

황량하고 고통스럽고 힘겨운 곳, “불 뱀과 전갈이 우글거리고

물이 없어 타는 곳”(신명 8, 15)이 광야다.


그러한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살아간다. 도저히 인간이 살아갈

수 없는 곳에서 이스라엘이 살아간다. 그래서 광야는 신비의

장소이다. 


우리 또한 삶의 무게와 고통에 짓눌려 살아간다.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간다. 바로 이 점, 죽지 않고 살아간다는 사실이 신비이다.


광야는 두 얼굴을 가진 장소이다. 한편에서는 힘겨움*황량함*외로움

등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하는 고통의 얼굴을 보이는 장소요,

다른 한편에서는 놀라운 섭리와 보살핌이라는 얼굴을 보이는 장소이다.


야곱의 후손들은 광야에서 고통과 보살핌의 두 얼굴을 체험한다.

갈증과 배고픔 앞에서 그리고 다른 부족들의 침략 앞에서 멸망할

위기에 놓이지만 하느님 덕분에 생명을 부지한다.


하느님께서는 물이라고는 없는 광야에서 물이 샘솟게 하시고, 먹을 것이

전혀 없는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리를 주시고, 아말렉 족의 침략에서

지켜주신다. 


우리의 광야 역시 두 가지얼굴을 보여준다. 한 편에서는 고통의 얼굴을,

다른 한편에서는 보살핌의 얼굴을 보여준다.


두 얼굴을 보여주는 광야에서 어떤 얼굴을 쳐다보느냐에 따라 우리 생명

의 존망이 달려있다. 고통의 얼굴을 쳐다본다면 절망하고 하느님을 원망하게

될 것이요, 보살핌의 얼굴을 쳐다본다면 하느님은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위기라는 말은 ‘위험’과 ‘기회’라는 두 글자가 합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위기의 때는 전환의 때이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다. 갈림길에 서 있는 순간이 바로 위기의 순간이다.


광야에서 고통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위기의 순간에 위험을 택한다는 것이요,

보살핌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기회를 택한다는 것이다. 모든 위기는 파국으로

끝나지 않고 기회라는 씨앗을 그 안에 내포하고 있다.


광야에서 고통의 얼굴을 바라보기보다 하느님의 돌보심의 얼굴을

바라본다는 것은 하느님만이 강하다는 것, 하느님만이 나를 이 광야에서

해방의 땅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고백할 때 하느님은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인간의 끝은 하느님의 시작이다. 인간의 절망이 하느님

의 기회다”라고 말한다. 하느님만이 나를 이 시련의 시기에서 구원해 줄

유일한 분이라고 고백할 때, 그리고 내 안에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고

고백할 때, 바로 그 순간에 하느님은 우리의 힘이 되어주신다. 하지만

우리가 이집트 방식, 곧 세속적 방식으로 광야를 대면하면서 해방되려고

애쓴다면 하느님은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신다.


우리 삶이 힘겨운 광야에 놓여 있을 때 우리는 그 광야가 두 얼굴, 즉

보살핌과 고통의 얼굴을 보여준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 갈림길의

순간에서 두 가지의 선택, 즉 위험과 기회라는 선택이 다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련이 혹독하고 어려움이 크면 클수록 하느님의 보살핌의 얼굴을 봐야한다.

“나는 기쁨과 즐거움, 의미와 보람, 자유인의 삶을 얻기 위해서 지금 이 광야

에서 하느님 보살핌의 얼굴을 택할 것이다. 지금 이 위기의 자리에서 기회를

택할 것이다.”라는 말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들려주어야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대 이렇게 말씀하신다.:

“두려워 말라, 힘을 내고 용기를 내어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와 함께

있으리라” 어려움이 크면 클수록 이 말씀을 우리 자신에게 더 자주 들려주어야

한다. 


광야에서 우리가 어떤 얼굴을 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길이 달라진다. 광야는

해방을 가져다 줄 수도 있고 죽음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 우리 신앙인들은

아빠 아버지의 사랑을 믿고 보살핌의 얼굴을 바라보아야 한다.

                                                송 봉 모 신부 지음.

오늘의 묵상: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 3,17-19)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 ‘불멸의 진리’인,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87년을 이 땅에서 사시다 가신 장인의 일생이 결국 한줌의 재로 변화되어

납골만을 모아서 항아리에 담고 납골묘에 안치한 것으로 이 세상의 삶을

마감하였습니다.


결국 우리는 이 세상의 삶에서 ‘하느님의 보살핌의 얼굴’만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할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나는 기쁨과 즐거움, 의미와 보람, 자유인의 삶을 얻기 위해서 지금 이 광야

에서 하느님 보살핌의 얼굴을 택할 것이다. 지금 이 위기의 자리에서 기회를

택할 것이다.”라는 말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들려주어야한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우리의 삶이 때로는 고달프고, 외롭다고 투덜거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두려워 말라, 힘을 내고 용기를 내어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와 함께

있으리라”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가 마음속에 품고 살게 하소서!


우리가 모두 먼지로 돌아갈 인생임을 깨닫는 다면 원수질 일도 없고

누구를 탓하면서 싸울 일도 없습니다. 모두 다 너그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용서하면서 참으로 좋으신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이웃과 평화롭게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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