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지(死地)에서의 유희(遊戱)-판관기7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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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광호 | 작성일2008-10-08 | 조회수493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사지(死地)에서의 유희(遊戱)-판관기71 <생명의 말씀> <말씀의 길잡이와 실천> 블레셋 창녀를 찾아서 하룻밤을 논 다음 성문을 통째로 뽑아다 산꼭대기에 버린 사건이 있은 후 얼마 되지도 않아서 삼손은 또 다시 블레셋 여자에 빠져 듭니다. 지금까지 기록된 삼손의 이야기를 잘 보면 모두 다 여자 그것도 하느님이 만나지 말라고 한 이방인 여자들과의 만남에서 발단된 것들입니다. 어느 것 하나도 예외가 없는 걸로 보면, 그만큼 삼손은 욕망- 특히 죄와 관계된 여자에 대한 욕망에 무척이나 약했지만 그 부분을 전혀 관리할 줄 몰랐던 사람인 것입니다. 삼손의 이 치명적 약점은 이제 삼손만 모를 뿐, 삼손이 제 집처럼 들락거리며 자기 욕망을 추구했던 블레셋 지방의 사람들은 다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모하게 삼손에게 직접 덤벼드는 일을 하지 않고, 삼손이 마음을 빼앗겨 버린 여자에게 가서 삼손의 약점을 알아 내라고 합니다. 스포츠의 경우 아무리 최강자라 할지라도 세계 대회에 두 번 정도 우승을 하면 약점이 간파되기 때문에 그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상대 선수를 만나면 고전을 면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최강자가 강자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건 끊임없이 자기 약점을 보완하는 노력이 있기 때문인데 삼손에게서는 전혀 그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여자가 몇 번이고 유혹하여 그 비밀을 캐물으면 분별력을 발휘해서 '이 사지(死地)에서 이제는 나와야겠구나!'하는 생각을 해야 하는데 삼손은 죽을 자리를 제 발로 찾아서 들어 가서는 이리저리 둘러대며 그 상황을 즐기고만 있습니다. 힘의 비밀을 알려 달라고 애걸복걸하는 여자와 밀고 당기는 게임이 삼손은 그저 재미 있었던 것입니다. 그 여자의 등뒤에는 자기 목을 겨누는 비수(匕首)가 숨겨져 있다는 것은 까맣게 모른 채 말입니다. 사람이 욕망에 이끌려 가기 시작하면 우선 하느님이 그 사람에게 주신 소명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삼손의 전 인생이 이랬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잠시간의 쾌락을 준 그 욕망이 그 사람 자체를 파괴해 버리는데 삼손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그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제대로 걸리면 그 자리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작전이 들어오는데 삼손은 이걸 모릅니다. 사지(死地)에서 빠져 나올 수 있도록 허락된 시간이 거의 다 되어 가는데도 삼손은 여전히 그곳이 사지(死地)인 줄 모르고 있습니다. 상대방은 내 치명적 약점을 알고 그곳을 공격하는데 여전히 삼손은 이전처럼 자기 힘을 이용해서 위험에서 극적으로 빠져 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일은 재미로 보는 액션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인데도 말입니다. 이런 삼손의 모습이 수천년 전 사람 삼손에게만 있는 것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 안에 분명 삼손이 있기 때문에 비극적 이야기 삼손은 여전히 묵상되어야 할 귀중한 텍스트라고 생각합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났든 아니면 노력을 통해서 얻었든 아니면 살아오는 과정에서 하느님께서 나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든, 내가 가진 능력 혹은 내가 가진 재산이나 지위가 하느님의 인도를 받지 않고 의식·무의식으로 내 욕망을 위해 움직이게끔 할 때 우리도 별 수 없이 삼손이 가는 길에 들어설 수밖에 업는 것입니다. 사지(死地)에서의 유희(遊戱)는 즐겁지만 그 대가 또한 혹독합니다. 영과 육 모두의 죽음이 거기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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