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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점입가경(漸入佳境)-판관기76
작성자이광호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20 조회수515 추천수2 반대(0) 신고

점입가경(漸入佳境)-판관기76

  <생명의 말씀> 
 유다 지파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에 한 젊은이가 있었는데, 그는 레위인으로서 거기에 몸붙여 살고 있었다. 그는 제가 살던 성읍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 다른 데 몸붙일 곳이 없나 찾아 나섰다. 그래서 돌아다니다가 에브라임 산악지대에 들어서 미가의 집에 다다랐다. 미가는 그에게 어디에서 오는 길이냐고 물었다. 그가 대답하였다. "나는 레위인입니다. 유다 베들레헴에서 살다가 어디 몸붙일 데라도 없는가 하고 찾아 돌아 다니는 길입니다." "내 집에 있으면서 어른이 되어 주시고 사제가 되어 주시오. 그러면 일 년에 은화 열 냥을 드리리다. 그리고 의식주 문제는 우리가 해결해 드리지요." 미가는 이렇게 그 레위인의 귀에 솔깃한 말을 하였다. 레위인은 그의 집에 머물기를 승낙하였다. 그 젊은이는 미가의 친자식처럼 되었다. 그 젊은 레위인은 임직식을 거쳐 미가의 사제가 되어 그의 집에 머물렀다. 미가는 이제 레위인을 사제로 삼았으니 야훼께서 자기에게 잘해 주시리라고 믿었다. (판관기 17:7-13)

 <말씀의 길잡이와 실천>
레위인은 본래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땅을 분배 받지 않고 각 지파들 땅에 흩어져 사제의 역할을 하는 사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땅을 주시지 않은 이유는 하느님 당신이 직접 그들의 땅이 되어 주실 것이니 너희는 각 백성에게 흩어져서 하느님을 섬기는 솔선수범의 삶을 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이야기에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사제의 삶을 살아야 하는 한 젊은이가 등장합니다. 베들레헴에서 몸붙여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보면 이 젊은이는 그 땅의 사제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몸붙여 살 다른 곳을 찾아 떠납니다. 다른 곳을 찾아 떠나는 것은 아마도 경제적인 이유 때문일 듯합니다. 판관기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대체로 하느님을 떠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사제인 레위인들은 아마 최저 생계가 보장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니까 더 나은 곳을 찾아서 떠났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경제적 조건이 삶의 최우선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어느 시대이건 경제적 조건은 인구 이동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으니까요! 그러나 한 가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신의 신분과 사명에 대한 깊은 자각 없이 자기가 만족할 수 있는 삶의 조건만을 위해 하느님께서 정해주신 것도 버리면서 떠난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라는 것입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이라는 우리 속담도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분명 세상에는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속한 사람은 세상에 살더라도 세상의 법을 맹목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따라 살아서는 곤란합니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세상의 법을 따라보라고 유혹한 마귀를 물리치신 예수님을 따라서 하느님의 법을 따라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주신 자기 자리를 떠난 젊은 레위 사람이 마침 미가라는 사람을 만납니다. 기막힌 만남입니다. 아마 사탄이 이 만남을 주선하지는 않았나 싶은 만남입니다. 지난 이야기에서 다 아시다시피, 미가라는 사람은 어머니의 은화 이천 백냥을 훔쳤다가 다시 가져갔는데 그 어머니가 그 은으로 신상을 만들자 자기 아들을 제 멋대로 사제로 임명하여 야훼를 섬기게 한 이상한 행동을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미가가 은으로 우상을 만들어 놓고 야훼를 섬긴다고 하고 있는데 레위 사람이 오니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드리리다. 일년에 은화 열냥을 드리리라. 우리집의 사제가 되어 주시오'하고 말합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원칙이 완전히 잘못되어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더 좋은 경제적 조건을 찾아 떠난 젊은 레위인이 거절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닙니다.

 더 황당한 것은 그 다음부터입니다. 미가는 우상을 만들어 놓고서도 레위인 사제를 얻게 되자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갈수록 태산이고 점입가경(漸入佳境)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제대로된 원칙을 배울 생각 없이 모든 것을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해석하면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면 젊은 레위인과 미가처럼 살 수밖에 없습니다. 원칙도 방향도 다 틀렸는데 하느님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니 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판관기 그 시절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읽되 자기가 마음에 드는 말씀만 읽고 싶어하고 (복 준다, 번성한다, 하느님은 너를 사랑한다. 기타등등) 조금이라도 부담이 되는 말씀은 애써 외면하거나 미루어 놓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자가를 저라 멍에를 메라 자기를 버려라 등) 그리고 성장과 성숙 변화를 요구하시는 하느님께 갖가지 이유를 대면서 자기 합리화에 빠져 버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끼리 끼리끼리 만나면 미가와 잚은 레위인 사제처럼 자시식대로 하면서 하느님께 복 받을 줄 착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세태를 한탄하며 사람들을 권면했던 사도 바울로의 말씀으로 오늘의 묵상을 마칠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초보적 교리를 넘어서서 성숙한 경지로 나아갑시다. 이제 와서 죽음에 이르는 행실을 버리고 돌아서는 일과 하느님을 믿는 일과 세례와 안수, 그리고 죽은 자들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과 같은 기초적인 교리를 다시 배우는 일은 없도록 합시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대로 우리는 성숙한 지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한번 빛을 받아서 하늘의 선물이 주는 기쁨을 맛보고 성령을 나누어 받은 사람들이, 또 하느님의 선한 말씀과 앞으로 올 세상의 권세의 맛을 본 사람들이 이제 배반하고 떨어져 나간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아들을 다시 제 손으로 십자가에 못박아 욕을 보이는 셈이니 그들에게는 다시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될 가망이 없습니다.<히브리서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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