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막내였던 나는 아버지의 단골 심부름꾼이었다. 아버지는 당신의 수입과 지출을 항상 공책에 기록하는 습관을 가지고 계셨는데, 아버지의 심부름은 용돈을 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주문하신 물품이 여러 종류여서 나는 나름대로 계산서를 만들어 돌려드리며 심부름 값을 청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심부름 값으로 얼마를 받고 싶으냐고 물어보시면서 “네가 한 일에 대한 값어치를 네 스스로 매겨서 청해 보아라.” 하셨다.
그 후로 나는 계산서를 드릴 때 항상 부가가치세처럼 심부름 값을 적어 넣곤 했다. 그 시절에는 내가 정한 심부름 값을 받아 저금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직장 생활을 할 때도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해마다 가계부를 기록했다. 아버지의 영향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초등학교 때 구구단을 잘 외우지 못해 나머지 공부를 해야 했던 내가 점점 숫자와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 것은 지금 내가 하는 사도직이 수도회의 재정을 맡아 관리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수도회는 회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도회는 국가에 재단법인으로 등록된다. 수도회는 회원들의 노동에 대한 대가와 은인들의 기부금으로 하느님의 사업을 한다. 대부분의 수도자들은 수도회에 들어오면 돈과 무관한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주님은 나를 이 일에 부르셨다. 때때로 주님은 나에게 이 일을 맡기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나를 준비시키셨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연례피정 때 우리 수도회의 주보성인인 빈첸시오 성인의 영성과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강의하시는 수녀님은 “하루가 모여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모여 일 년이 되고, 일 년이 모여 영원이 됩니다.”라는 성인의 말씀을 소개해 주셨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내 머리에는 이런 말씀이 떠올랐다. ‘백 원이 모여 천 원이 되고, 천 원이 모여 만 원이 되고, 만 원이 모여 하느님의 일을 합니다.’
김인옥 수녀(사랑의 씨튼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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