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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던 이에게 주어진 축복(성거산지기 신부님 사목단상 3)
작성자김시원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23 조회수569 추천수8 반대(0) 신고
 
 
Photo by 성거산지기 정지풍 아킬레오 신부님 
 
 10월에 피는 성거산의 야생화
 
 
 -사목 단상(斷想)2-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던 이에게 주어진 축복


의외로 시골 성당에는 아직도 노인층에는 도회지보다 문맹자들이 많았다.  시골 본당에서 교리를 가르치다보면 한글을 몰라 영세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가끔 있었다.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른다.' 는 옛말과 같이 글을 몰라 3년 동안을  교리를 마치고도 영세를  받지 못한 60대 부인이 있었다.  우연찮게 이러한 속사정을 알고 난 어느 날 미사 후에 그 자매님과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자매님! 안녕하셨어요. 그런데 영세를 받으셔야지요? ' 하고 말을 건네자  갑자기 그 자매는 고개를 떨구며 침묵을 지키는 것이었다. 혹시 너무나 아픈 부분을  건드린 것 같아 오히려 내가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 자매님은 신부님이 자기 내면의 비밀스러운 것을 알고 있는 듯 한 느낌이 들었는지 말을 하지 않고 계면쩍어 했다. '자매님! 잠간 저 좀 보세요?' 하고는 신자들이 다 돌아 간 후에 자매님에게 사제관에서 차 한 잔 하자고 제안을 하였다.  자매님의 얼굴엔 약간은 불안해하고 초조한 안색이 돌았지만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는지 '그러지요' 하고 사제관에 들어 오셨다.  

 

쇼파에 앉으시게 한 후 '무슨 차를 드릴까요?' 하고 묻자. 자매님은 신부님이 손수 차를 끓이려고 하는 눈치를 챘는지 자기가 차를 준비하겠다고 하였다. 그럼 맛있게 차를 끓여달라고 하면서 자매님에게 기회를 넘겨주었다.  자매님은 커피를 맛있게  타오셨다.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자매님은 제 눈치를 보면서 사실은 신부님께  드릴 말이 있어 전부터 면담을 하고 싶었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그럼 진작 찾아오시지 그랬어요?'하자  자매님은  '신부님이 이 본당에 오신지 얼마 되지 않으셨잖아요.'하면서 말끝을 잇지를 못하였다. 

 '자매님! 그러지 말고 지금 말씀하세요?  괜찮으니까 하실 말씀이 있으면 다  털어 놓으세요.  제가 도와 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다 도와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자  쑥스러우신지 잠시 머뭇거리시더니 말문을 열었다.   자기는 남에게 말 못할 속앓이 병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지난날의 거칠고 탁한 인생을 살아온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하였다.

  자기는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에 태어나서 못 배우기도 했지만 내가 어렸을 때에는  '여자가 글을 배우면 팔자가 세지고, 집안이 망한다.'  고 외할아버지가 절대 못 배우게 했어요. 그것이 이렇게 두고두고 내 평생에 이렇게 한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고 했다.  외할머니도 영감의 말에 동조하여  ' 이제껏 아무 불편 없이 잘 살았는데  왜 새삼스럽게 그런 걸 배우려고 하냐구'  구박을 하며 제가 한글 공부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였고, 

 자기편이 되어 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고 했다.  한번은 어른들이  잠들었을 때 몰래 다락방에 올라가 숨겨둔 책을 가지고 한글 공부를 하다가 피곤하여 잠이 들었어요.  잠결에 발로 등잔을 넘어뜨려 불이 나서  밤중에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고 했다.  그래서  불을 끄다가 자기 머리도 태워 먹어 한 동안 외출도 하지 못하였고, 외할아버지한테  종아리를 맞으며 눈물이 날 정도로 혼난 적이 있다고 했다.  그 후로는 글 배우는 것을 포기했다고 하였다. 그녀는 가슴에 묻힌 사연들을 이야기하면서  얼굴에는 두 줄기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저와 눈길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자매의 의식적인 행동을 보면서 그 자매님의 가슴에 묻어둔 슬픔의 농도를 읽을 수 있었다.

 '신부님! 제가 받은 설움은 며칠을 두고 말해도 다 못해요. 아마도 소설을 쓸 수 있을 거예요?'  하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기도문을 외우고 싶어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미사 때나 반 모임 때에 기도를 바칠 때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한 템포를 늦추어 속으로 따라 하기도 하였고, 마치 붕어같이 입만 뻐끔뻐끔 벌리고 흉내를 내는 자기 모습을 보면 한심하기가 짝이 없었고, 그럴 때마다 자기 가슴은 멍이 들었다고 하였다.   

 서울에 사는 아들 며느리한테서 편지가 오면 말 안 듣기로 소문난 손자 녀석을 꼬시어 사탕을 사줘가며 읽어달라고 사정을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혹시나 누가 글씨라도 쓰라고 할까 봐 사람 많이 모인 데는 겁이 나서 가지도  않았고 은행에 가서 돈 한 번 찾아보지 못하였고 했다. 한 마디로 그녀는 눈 뜬 장님이었다.  언젠가  '어떤 아줌마로부터 은행에 갈 때마다 일부러 손에 붕대를 감고 가서 다쳐서 글씨를 못 쓰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글씨 부탁을 했다'  는 피눈물 나는 그 얘기를 들었다고 했는데  그 이야기는  바로 자기 심정과 똑같았다고 하였다. 

 그 동안 한글을 배우려고  초등학교 3학년 손자 녀석에게 한 달에 삼 만원 용돈을 주며   ‘기역, 니은…….’  정도는 배웠는데  이 녀석이 하도 구박을 하고  '이것도 모르느냐' 면서 자존심을 건드리는 바람에 그만두고 말았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새 제 가슴이 저려 옮을 느낄 수 있었다.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른다.' 는 문맹이라는 죄 아닌 죄명!  글을 읽지 못하는 까막눈으로 빚어진 비애(悲哀)였다.  이 자매님에게는 마치 가슴에 문맹의 독화살 같은 것이 꽂혀 있었다.  그녀의 슬픔의 노하우가 바로 이것이었구나!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과 자존심이 꺾이는 두려움 때문에 그동안 애간장 태우며 쌓였던 수모와 상처가 눈물로 쏟아진 것이었다.

 쏟아낸 말 중에서 저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던 것 중의 하나는 신앙에 입교하기 위해 받은 상처였다.  작년에도 교리 반에 참석하였다가  마지막 찰고 시간에 외우야만 되는 기도문을 외우지 못하였다.  하다못해 '기도문을 보고 읽기만 하라' 는 신부님의 배려에도  '눈이 침침하고 잘 안보여 못 하겠다' 고 하였다. 그리하여 자기는'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 기도' 만이라도 외우면  영세를 주겠다고 약속을 하였다고 했다.

 눈 뜬 장님으로 수모를 겪으신 할머니의 설움을 생각하니 마음에 무척 아팠다. 이 자매의 슬프고 힘들었던 지난날의 시간들을 누가 보상해 줄 수 있을까?  당장 세례를 주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기도 하였으나 영세를 주는 것만이 이 자매님의 아픔을 치유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자매님을 위로하고  격려를 해주며  용기를 주었다.

 이 자매는 글을 몰라도 노래를 무척 잘 하였다.  라디오나 TV에서 나오는 노래는 거의 따라 부르고, 노래 제목만 이야기하면  노래 가락이 술 술 쏟아져 나오곤 하였다.   성당 행사나 야외 모임에서는 자기는 당연히 노래를 시키리라고 생각했고, 기회가 오지 않으면 서운해 할 정도로 노래 부르기를 좋아 하였다.  어떤 때는 자기 노래에 취해서 감당이 안 될 때도 있지만  익숙해진 사람들은  '저 여자는 원래 그런 여자야!'  하면서 자연스럽게 애교로 받아주기도 하였다.  숙기 없고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여자들은 은근히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평상시에는 약간 수줍어하는  내성적인 성격인 것 같지만 흥겨운 노래 가락이 나오면 덩실덩실 어깨춤이 자동적으로 나오곤 하였다.  그 자매님을 처음 만나는 사람은 갑자기 돌변하는 그녀의 행동에 놀라기도 하였다. 그녀는 노래를 잘하는 한 가지 매력 때문에  부족한 영역이 관대하게 평가를 받으며 후광 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여자였다. 이 자매님이 신명나고 제일 행복한 시간은 흥이 넘치는 잔치집이나 성당의 축제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은 이 자매를 레코드판이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다.

 모임의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신자들은 '레코드판 좀 틀어!' '레코드판 어디 갔어.' 하며 찾곤 하였다. 이 자매가 있는 곳에는 항상 웃음이 꽃을 피웠고, 재미가 있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일거리에 찌든 많은 농촌 사람들에게는 웃음과 즐거움을 안겨주는 흥겨운 시간이 되기도 하였다.

어느 날  저녁 어떻게 하면  이 자매님의 고민을 풀어 드릴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배우는 고통은 잠깐이지만 못 배운 고통은 평생이다.’ 는 말이 생각이 났다 그렇다 우선 먼저 자매님에게  남은 인생을 기쁘게 사시도록 눈을 뜨게 해 드리자. 늦게나마 글을 깨우쳐  자유롭고 해방된 삶을 살도록 해드리어야 한다. 이것만이 그녀의 가슴에 박힌 슬픈 못을 빼내는 일이고, 지난날의 아픈 상처들을 기워 갚는 값진 보상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이 자매님과 같이 한글을 모르는 분들을 구역장들을 통하여 비밀리 조사를 하였다.  모두 23명의 명단이 나온 것을 보고 참으로 놀랐다.   수강자들의 수치심을 고려하여  '한글 바로 알기' 라는 이름으로 주간 중 성당이 제일 한가한 월요일과 목요일 저녁시간에 택하여 수업을 시작하였다.  가르치는 선생님은 신자 중 초등학교 선생님 두 분을 선택하여 봉사하기로 하였다.  시골은 저녁이면  버스시간이 다 끊어져 성당 봉고차와 신부님 차가 움직여야 했다. 지루함을 줄이기 위하여 간식도 준비하여야만 했다.  정해진 날짜에 정기적으로 차를 운전하는 것도, 간식을 준비하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었지만  글을 몰라  고통과 수모를 겪었던 문맹자들의 영혼을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열심히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가끔 글을 터득해 간다는 선생님들의 경과보고를 들려주었다.

 '이런 기회를 만들어 주신 신부님과 학교 수업도 힘들 텐데 일자무식인 자기들을 위하여  한글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너무나 고마워서 포기하지 못하겠다.' 는 소식도 알려주었다. 저는 순수하고 맑은 마음씨를 가진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쁨이 샘솟았고 행복하였다.

 6개월 만에 드디어 '한글 바로알기 수료식'  을 하게 되었다.  23명중 19명이 눈을 뜨게 되었고, 나머지 4명은  더 시간이 필요했다. 글을 해독한 19명에는 축하의 박수를 쳐 주고 싶고. 4명은 격려와 인내의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눈을 뜬 자매님들은 글을 안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건지 몰랐다고 했다. 참으로 인간 승리였다. 이제 거리를 다녀도 아는 글자들이 눈에 들어왔고 사는 것이 재미있고 행복하여 새롭게 인생을 사는 것 같다고 하였다.  어떤 자매님은 '이제는 다리를 뻗고 잘 수 있겠다' 고 하였고, 어떤 이는  '손자 녀석에게 구박과 핀잔을 받지 않게 되어 살 것 같다'  며 너무 기쁘다고 하였다.   그동안 수고하신 선생님들과 이 자리에 함께한 분들은 이 소리를 듣고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기도문을 읽지 못해 영세를 못 받은  자매님은 누구보다  더 흐느끼며 울었다. 한 맺힌 서러움과 슬픔에서 해방되는 기쁨의 눈물이었다.  수료식을 마치고  그동안 밤늦게까지 공부하느라고 수고한 수강자들을 위해 축하파티를 마련 해 주었다.

 "고생하며 무거운 모든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마태오 11장 28절)는 말씀과 더불어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 (창세기28장15절) 말씀이 동시에 가슴깊이 체험되는 순간이었다.

수료식을 마친 며칠 후에 기도문을 읽지 못해 영세를 못 받은 그 자매님을 집을 찾아 갔다.  그 자매님은  신부님을 보자  마당에 까지 뛰어 나와 반가워하며 제 손을 오랫동안 꼭 잡아 주었다. 그것은 고마움과 감사함을  몸으로 표현하는 신체언어(Body Language ), 침묵의 언어(Silent Language)였다.

 방에 들어 가보니 벽에는 마치 비온 날 지렁이가 그림을 그린 것 같은 글이 눈에 띄었다.

 그 것은 그림이 아니라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 기도문의 글이었다. 물어보니 자매님이 손수 썼다고 하였다. 벌써 글을 배운 위력이 나타나는 것을 보니 참으로 보기 좋았다. 노래로 담은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 테이프를 선물로 건네주며 이제는 이 기도문을 쉽게 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 해주었다. 그리고 아녜스라는 세례명을 지어 주며  8월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날 영세 받을 준비를 위해  8월14일 날 성당에 오시라고 하였다. 아녜스 자매님은  갑자기 저를  따듯한 아래 목에 앉으라고 하더니 큰 절을 하였다.

 서로에게 뜨거운 감사의 정이 흐르는 순간이었다.   

마치 새벽 일찍이 마리아 막달레나가  향유를 가지고 예수님 무덤을 찾았듯이,  8월14일 이른 아침 아녜스 자매님은 산에서 채취한 토종꿀 한 병을 가지고 성당에 찾아 왔다. 얼굴이 무척 밝고 평화스럽게 보였다. 아녜스 자매님과 처음 커피를 나누며 이야기 했던 그  쇼파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영세를 받게 될 소감을 물으니 '너무 가슴이 벅차고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  고 하며  '일생의 가장 행복한 날이 될 것' 같다고 했다. 더욱 놀란 것은 선물로 준 기도문 테이프를 다 외우고 있었다. 아마도 노래로 기도문을 외웠기 때문일 것이라고 자신 있게 추측해 보고 싶다. 아녜스 자매님은 어느새 누가 시키지도 안했는데  노래로 기도를 하면서 신부님 앞에서  스스로 자기를 검증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오페라의 열창에 감동의 기립박수가 나오듯이  나는 나도 모르게  기립박수를 치고 있었다.

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눈부신 햇살이 아녜스의 흰 옷을 비추며 새 옷으로 단장을 하고 있었다. 새 사람으로 태어난 사람임을 알리듯이.........

 영세를 받은 후  아녜스 자매님은 매일 성서를 쓰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 왔다. 참으로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불가능이 없는 것 같다.

 하느님! 당신의 한 자녀를 만들기 위해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 성거산지기 신부님 사목단상 3

 http://cafe.daum.net/sgm2008 성거산 성지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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