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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전 요셉 신부님의 복음묵상 맛들이기 - 연중 제 30 주일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25 조회수704 추천수10 반대(0) 신고

연중 제 30 주일 - 로얄 패밀리

 

어느 가난한 집 딸이 큰 부잣집으로 시집을 왔습니다. 결혼하기 전엔 느껴보지 못하던 부자의 삶을 살게 되어 처음엔 잘 적응이 안 되었나봅니다.

좋은 차도 사고 좋은 옷도 사고 비싼 곳만 다녔습니다. 로얄 패밀리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뭔가 부족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를 보다 못한 시어머니가 한 마디 하였습니다.

“얘야, 넌 아직 완전히 우리 며느리가 안 된 것 같구나. 돈을 많이 쓴다고 부자가 아니란다. 네가 가짜 다이아를 하고 가짜 밍크를 걸치고 다녀도 사람들은 그걸 다 진짜로 본단다. 우리 집은 남들이 알아주는 부자야. 난 네가 참으로 한 가족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울산 어느 본당에 부임한 신부님은 그 동네에서 매우 유명한 회장님을 한 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성당 지을 때마다 큰돈을 내시는 큰 부자라는 것입니다.

한 번은 신자들이 그 신부님께 저기 오시는 분이 그 분이라고 귀띔해 주었습니다. 멀리서 오시는 분은 오래 된 자전거를 타고 남루한 작업복에 모자를 뒤집어쓰고 오시는 보통 아저씨였습니다.

그 신부님은 자신의 예상이 크게 빗나간 것에 대해 매우 놀랐습니다. 그런데 그 분과 이야기를 하면서 더 놀랐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하도 겸손하셔서 사람들에게 드러나기를 원치 않으시고 보통 사람들보다 자신을 더 낮추는 모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지금도 중국에 많은 후원을 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위의 두 이야기는 모두 실제 이야기입니다. 진정한 로얄 패밀리의 삶을 사시는 분은 당연히 아래의 회장님이십니다.

그 집에 시집을 갔다고 해서 완전하게 그 집의 영광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 집 분위기에 흡수되어야 하는 것인데 위의 며느리는 서류상으로는 그 집 가족이지만 삶 자체로는 완전한 가족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집안에 시집을 가더라도 돈이 영원한 생명과 완전한 자유를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그런 모든 것들을 얻기 위해서는 진정한 로얄 패밀리인 하느님의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례를 받으면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에 그 집의 가족이 됩니다. 그러나 그 집에 시집갔다고 해서 완전하게 그 집의 영광을 누리는 것이 아닌 것처럼,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완전한 자유와 기쁨과 행복과 영원한 삶을 약속 받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적으로 그 집 분위기에 흡수되어야 참다운 가족이 되는 것이고 그래야 그 가문의 영광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가문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즉, 하느님 가문의 분위기는 사랑인 것입니다. 그 사랑의 분위기에 푹 빠지지 않으면 진정한 하느님의 가족이 되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면 그 가족으로서 누릴 수 있는 영광들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그런 모든 영광을 주시는 방법으로 인간 사회와 마찬가지로 혼인의 방법을 쓰셨습니다. 하느님은 당신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어 교회와 혼인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 이들은 하느님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같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하느님을 사랑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의 증거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이 계명을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받았습니다.” (1요한 4,21-22)

따라서 마음 안에 미움이 있는 사람은 세례를 받아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실제적으로 교회에 속한 사람은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사랑의 기쁨과 행복보다는 슬프고 불행하다고 느낍니다. 진정으로 하느님 가족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미워하지 않는 것은 시험에서 통과점수에 불과합니다. 완전한 로얄 패밀리의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것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그렇게 사시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라는 구체적인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사신 대로 우리도 살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13,34)

사랑은 모호한 무엇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이웃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어제 ‘님은 먼 곳에’란 한국 영화를 보았습니다.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한 여자가 어떤 집에 시집을 왔는데 그 남자는 아내를 좋아하지 않고 애인이 있어 아내를 거들떠도 안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군대에 가 버렸고 면회 온 아내에게 사랑을 알기나 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묻습니다. 남편은 다른 여자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내는 말은 안 했지만 그런 남편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월남전에 참전하게 되고 아내는 남편을 찾아 갖은 고생을 하며 월남까지 갑니다. 남편은 모르지만 아내는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남편의 생명까지 구합니다. 그리고 남편 앞에 섭니다. 남편은 자신을 그렇게까지 사랑한 아내 앞에 얼굴을 못 들고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습니다.

 

사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면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 수 없겠지만 위의 영화에서 그나마 부부의 행복이란 걸 느낄 줄 알았던 사람은 애인이 따로 있었던 남편이 아니라 그런 남편까지도 사랑할 줄 알았던 아내입니다. 남편은 결국 아내도 애인도 온전히 사랑할 수 없었고 그 행복도 맛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아내로서 그런 남편까지 사랑할 줄 알았기 때문에 적어도 주는 사랑의 행복을 느끼고 남편 앞에 당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면 행복합니다. 그러나 만약 의처증이 있는 남편이 있다고 합시다. 그는 아직 아내와 온전히 혼인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를 의심하고 그래서 부부의 행복은 맛 볼 수 없습니다.

질투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에 질투하는 사람 자신은 상대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온전하게 사랑할 수 없고 또 사랑도 받지 못합니다.

 

이렇게 온전히 행복하려면 온전히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먼 곳에 있는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바로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과 온전히 혼인하여 그 사랑에게서 오는 행복과 자유와 기쁨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 로얄 패밀리가 되는 길입니다.

 

 

- 로마에서 공부하시는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복음묵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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