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율법과 사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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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용대 | 작성일2008-10-26 | 조회수550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마태오 22:34-40)
하느님의 율법과 계명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묵상해 본다.
바리사이인들도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의 모세 오경(五經)에 실려 있는
하느님의 율법을 잘 알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종교적인 의식도 충실하게 치렀다.
그들은 모세의 법에 따라 613개의 율법을 다시 만들고 많은 랍비들의 율법들에 대한 해석을 싣고 있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이 율법을 잘 알고 계시고 의식을 잘 지키시는지
시험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현대인들은 바리사이인들과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신약 성경을 주로 읽으면서도 그리스도를 전혀 모르는 사람 같이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복음에서 가장 강조하신 ‘사랑’이 넘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율법과 계명에 따라 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십 계명 위주로 고해성사를 보는 것도 한 원인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가톨릭대사전에서 ‘대죄’를 찾아 보았다.
《대죄(大罪) 또는 사죄(死罪)는 죽음에 이르는 죄를 말한다.
교회 전통은 죄를 사죄와 경죄輕罪)로 구별하여 왔다. (
스콜라 학자들의 용례에 따라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은 사실이다.
죄의 종류를 변하게 하는 상황도 말해야 한다고 했으며
흔히 죄의 종류를 병(病)과 죽음에 비유하여 구별한다.
사죄의 본질은 생명과 은혜의 하느님을 배역(背逆)하는 것이다.
사죄는 인간이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신 하느님을 알면서도 완전한 자유의지로
자기 자신이나 피조물에 집착하는 행동을 두고 하는 말로
이에 대하여 경죄는 하느님의 사랑을 저버리지는 않았으나 불성실한 응답이라 할 수 있다.
사죄와 경죄는 이와 같이 본질적인 차이가 있으나 이를 윤리생활에서 실제로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채워져야 한다.
사죄의 결과로는 하느님의 은혜인 초자연적 생명을 잃게 되고 그 상태에서 죽는다면 구원이 없는,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St. Cyril of Alexandria, 375-444) 주교 학자가 말하였다.
“‘하나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하는 첫 번째 계명은 모든 선(善)을 일러 말씀하신 것이다.
진심으로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선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아라.’는 두 번째 계명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의로운 행동을 말하고 있다.
첫 번째 계명에서 두 번째 계명을 지키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고
첫 번째 계명은 두 번째 계명을 실천함으로써 완성된다.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자신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이웃도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두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모든 계명을 지키는 것이 된다.”
성인의 말씀대로라면 우리들은 십 계명을 잘 못 해석하고 있었던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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