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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과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셨던 이 베네딕도 형님"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03 조회수931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8.11.3 월요일 이 이철(베네딕도)님을 위한 장례미사 
                                                                                              
욥기19,1.23-27 요한6,37-40

                        
 
 
 
 
"하느님과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셨던 이 베네딕도 형님"
 


눈물이 없는 저입니다만 
돌아가신 베네딕도 형님을 생각할 때면 저절로 눈물이 납니다.
 
성인답게 사셨던 저희 형님 베네딕도는 10월31일에 돌아가셨고
다음 날 11월 1일 모든 성인들의 대축일에 성인의 대열에 합류하셨습니다.
 
그래도 저는 수도원 미사드릴 때도, 기도할 때도, 밥 먹을 때도
형님이 생각나면 눈물이 나고 목이 멥니다.
 
저희 형님은 참으로 훌륭하셨고 좋으신 분이셨습니다.
 
여기 계신 하느님과 형제자매님들,
그리고 형수님과 제가 그 증인입니다.

어릴 적부터 저보다 10살 위이신 베네딕도 형님은
저희 집안은 물론 저희 마을의 자랑이자 꿈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똑똑하여 어머님 심부름은 도맡아 하셨고,
초중고 졸업 때 마다 1등하여 계속 도지사 상을 탕을 탄 수재이셨고,
60년대 시골에서는 선망의 대상인,
하늘의 별따기 보다 어렵다는 사관학교에 들어가셨습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방학 때 마다 형님을 기다렸고
사관생도 복장 위에 만토를 휘날리며 다닐 때
저는 형님이 너무 자랑스러워 뒤를 졸졸 따라 다녔습니다.
 
사실 형님은 저의 초중고 10년 선배이기도 합니다.
형님은 저를 많이 사랑하셔서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한글을 깨우쳐 주셨고,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는
사관생도 봉급을 아끼셔서 학원사에서 나온
러시아 프쉬킨의 명작 ‘대위의 딸’이라는 책도 사다 주셨습니다.
 
형님의 사랑이 밴, 최초로 감명 깊게 본 책이었기에
49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이후 형님은 1969년 10월 4일 결혼하시기 전
만족한 표정으로 저에게 형수님을 소개시켜주셨고
저는 결혼식에도 참석하였습니다.
 
제가 수도원에 입회하기전 거의 10년 동안
저는 서울 형님 댁에서 교대를 다녔고 교편생활을 하였습니다.
 
수도원 입회 후에도 가끔 수도원을 찾아 저를 격려하셨고
저 역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고향의 품을 찾듯이 형님을 찾았고 지혜로운 충고와 위로를 받았습니다.
 
생각하면 베네딕도 형님은 참 행복하셨고
사랑을 많이 받으셨던 분임을 깨닫게 됩니다.
 
형님의 임종직후
형님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오열하시던 형수님의 말씀도
저에겐 감동적이자 충격이었습니다.

“착한 사람, 착한 사람....미안해요. 미안해요...
  장가 잘못 들어 고생 많이 하시고...”

형수님의 참 사랑이 그대로 밴 말씀을 듣는 순간,
‘아, 형님은 구원 받았고,
형수님의 모든 잘못도 용서받고 구원 받았다’ 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평생 가까이에서 아내의 한결같은 존경과 사랑을 받은 형님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셨고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만 15개월 동안 지극 정성으로 간병하셨던 형수님의 사랑은
아마 평생 사랑했던 것보다 몇 배는 됐을 것입니다.
 
이렇게 부인의 사랑을 받다 임종한 남편들 과연 몇이나 되겠는지요.
 
이토록 형님은 아내는 물론
많은 분들로부터 존경과 사랑, 신뢰를 한 몸에 받으셨습니다.
 
사심이 없어 공평무사했고 똑똑하고 정의로웠으며,
참으로 선량하신 분이셨습니다.

형님은 하느님의 사랑 역시 한 몸에 받으며
15개월의 투병 생활을 하셨습니다.
 
15개월 동안 수도사제 동생인 저는 매일 수도원 미사 때마다
베네딕도 형님을 위해 기도했고,
주일 오후마다 잠시 방문하여 병자영성체와 더불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형님은 언제나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저를 맞아 주셨고
갈 때는 꼭 ‘고맙다.’ 라는 인사를 하셨습니다.
 
참으로 형님의 투병생활은 하나의 전투였습니다.
훌륭한 군인답게 언제나 존엄과 품위를 유지하면서
최후의 죽음을 맞이할 순간까지 침착하게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하여 베네딕도 형님은
주님의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하셨고
마침내 구원의 부활을 선취하셨습니다.
 
이어 하느님은 선종하신 다음 날 베네딕도 형님을
모든 성인 대축일에 성인들의 대열에 합류시키셨습니다.
 
투병하시던 베네딕도 형님의 모습은
오늘 1독서의 욥의 모습과도 흡사합니다.

“아, 제발 누가 나의 이야기를 적어 두었으면!
  제발 누가 비석에다 기록해 주었으면!...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계심을....
  내 살갗이 이토록 벗겨진 뒤에라도 이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
  내가 기어이 뵙고자 하는 분,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
  속에서 내 간장이 녹아 내리는 구나.”

욥처럼 임종 말기 간장이 내리는 처절한 고통 속에서도
마음 하나 무너지지 않은 믿음의 사람, 저희 형님이셨습니다.
 
또 하느님은 저를 통해 베네딕도 형님을
주일 마다 15개월을 방문하셨으니
아마 이처럼 하느님의 사랑을 받은 분도 드물 것입니다.
 
참으로 사람들의 사랑과 하느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참 행복한 사람 저희 베네딕도 형님이셨습니다.

주님은 오늘 복음에서 아드님을 믿는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고
마지막 날에 모두 살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말보다는 한 평생 옳고 바른 삶으로
믿음의 삶을 사셨던 베네딕도 형님을
주님은 마지막 날에 분명코 살리실 것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 모두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슬픔을 거둬주시며,
따듯한 위로와 풍성한 평화를 주십니다.

“주님, 이 베네딕도 형님에게 영원한 빛을 비추소서,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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