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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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순 | 작성일2008-11-10 | 조회수507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오늘의 묵상입니다, 북한측의 요청으로 오바마 측과 북한 정부 대표단과의 첫 만남이 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이뤄졌습니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대북정책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얘기들을 하고 있으나 청와대만 고집을 피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실제적 조치보다는 ‘말이 앞선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시각인듯 합니다. 한승수 국무총리는 어제 SBS 시사프로그램인 `선데이 뉴스플러스'에 출연하여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헌법재판소 접촉' 발언과 관련, "강 장관의 발언은 굉장히 부적절하고, 경제가 어려운 이 시점에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하였습니다. 한국은행과 FRB(미 연방 준비 은행)간의 한미 통화 스와프 협정은 정부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국책은행간의 협정으로 한국은행의 업적을 기획재정부가 주도한 것처럼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오늘 복음은 세 단락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너무나 당연하고 지당하신 말씀이지만 오늘 말씀처럼 지키기 어려운 말씀도 없어 보입니다. 오늘 말씀과 오늘 우리 현실과 얼마만큼 괴리가 있는가를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조계사에 피신했던 촛불집회 주요 인사들이 최근에 모두 체포되어 구속되었습니다. 이들이 죄를 지었다면 그 원인은 이명박 대통령이 한미 쇠고기 협상을 졸속으로 처리하여 죄를 짓게 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작은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것보다,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 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 의하면 이명박 대통령은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고 하십니다. 본인이 교회 장로라고 하고 있으므로 주님의 말씀을 거역하려면 차라리 교회 장로가 아니라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교회 장로라는 사실을 온 나라가 다 알고 있으니 그들이 백번 천 번 잘못했다 하더라도 우리 그리스도교가 살고 본인이 살기 위해서 백번 천 번이라도 잘못이 없다고 말해야 합니다.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하셨습니다. 이 부분은 문맥이 조금 이상한 듯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하셨는데 앞 문장인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를 수식하면 2절에 있어야 하고, 뒤 문장을 수식하면 조심할 이유도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성경의 장절이 잘못 구분된 경우에는 뜻이 다른 의미로 이해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의 장절구분은 16세기 중반에 구분하기 시작하였으며 16세기 초 종교개혁 전에는 모든 성경은 라틴어로 쓰여 졌으며 자국어로 번역을 못하게 하였으므로 라틴어를 모르는 일반인들은 성경을 읽을 수도 없었고 라틴어를 아는 성직자들만 성경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마틴 루터가 이에 반기를 들고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자국어 성경을 접할 수 있는 길을 터 준 공로는 인정해야 하고 마틴 루터가 없었으면 아마 지금 저희들이 라틴어가 아닌 한글 성경을 접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제가 잘못한 경우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로 빠져야 하며 제 잘못이 없는 경우에는 다른 사람이 죄를 범했다면 꾸짖고 그리고 반성하면 용서하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자기 잘못이라며 국민앞에 두 번이나 사과하였습니다. 남을 죄짓게 하지 말고, 또 죄를 지어 회개하면 하루에 몇 번이라도 용서하라 하였습니다. 지금 이 땅에서 일어난 모든 범죄의 원인은 전부 우리 사회에 있고 우리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에게 있습니다. 사회에서 소외되어 사회에 증오심을 갖게 한 것은 우리의 보살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리와 함께 식사하며 그들을 오히려 챙겨주셨습니다. 남이 잘못하였으면 먼저 꾸짖고 반성하면 용서를 하라 하였습니다. 반성도 하지 않고, 거짓 반성을 하는 자를 어떻게 할 수 없어 우리는 법을 만들어 다스리고 있습니다. 法治는 어디까지나 德治의 아래이므로 法治가 德治를 우선할 수 없습니다. 참된 주님의 말씀으로 修身한 사람이 이 나라를 다스려서 이 나라가 평화로운 나라가 되는 그런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도 가지고 있으면 그런 나라가 반드시 올 것이라 하셨으니 오늘도 그런 희망으로 하루살이를 시작하겠습니다. 대자대비 하신 아빠 하느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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