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께 세 번씩 여쭤야 하는 이유-판관기8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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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광호 | 작성일2008-11-17 | 조회수603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하느님께 세 번씩 여쭤야 하는 이유-판관기87 <생명의 말씀> <말씀의 길잡이와 실천> 군대의 대오를 정비한 이스라엘군은 하느님께 어느 지파가 먼저 베냐민 지파를 치러갈지 묻습니다. 거의 모든 정복 전쟁에서 늘 그러했듯이 하느님께서는 유다 지파에게 선봉을 명하십니다. 그런데 첫 번째 싸움의 결과는 패배입니다. 이스라엘 연합군은 이만 이천명이나 되는 병력을 잃었습니다. 베냐민 지파의 죄악을 처단하겠다고 집결해서 당당하게 하느님께 누가 먼저 치러갈지까지 묻고 전투를 시작했는데 결과가 완전한 패배로 나왔기 때문에 당시 이스라엘 연합군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다음날 또 전투를 벌이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께 묻습니다. 그런데 하루 전과는 태도나 그 묻는 내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통곡하면서 하느님께 묻는데 그 내용도 동족인 베냐민 사람들과 또 싸워야 하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쳐올라가라고 하셨는데 결과는 또 패배이고 이번에는 만 팔천이나 되는 병사가 죽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과 전군이 베델로 올라가서 온종일 단식하고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동족인 베냐민 사람들을 계속 쳐야 하는지 아니면 그만두어야 하는지를 하느님께 묻습니다. 지금까지는 베냐민 지파의 땅 기브아에서 일어난 만행을 보고 인간적인 분노에 휩쓸려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행동했는데 두 번의 패배를 겪고 나니까 비로소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이 정당한가? 하느님 보기시에는 어떻고 주님은 어떻게 하기 원하실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의로움(self-righteousness)에 도취되어 있을 때는 균형감 있는 생각이나 분별을 할 수 없고, 뭔가에 홀린 듯이 속전속결로 큰 일을 저지르려고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상황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두 번의 큰 패배를 겪게 하심으로써 자기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큰 죄를 저지른 자를 응징하는 일은 분명히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고만 생각하고, 대량살상 계획을 분별없이 준비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제야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세 번째 질문에 하느님께서 답하십니다. "나가거라. 내일 내가 그들을 너희 손에 붙이리라." 이전에 하느님께서 하셨던 답에 한 문장이 더 붙어 있습니다. "내일 내가 그들을 너희 손에 붙이리라."라는 구절입니다. 이전에 하느님은 나가라고만 하셨지 승리를 약속해 주시지는 않았는데 이번에는 승리를 약속해 주십니다. 하느님께서 세 번째에 싸우러 나가면 너의 손에 붙여 주겠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베냐민 지파의 죄를 벌하실 마음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정의를 세우기 위해 도구로 쓰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정결하게 된 이후에 그들을 통해서 당신 뜻을 펴시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남의 죄를 꾸짖어서 바로 잡아 주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부터 깨끗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보기에 아무리 정당해 보여도 무엇을 하든지 하느님께 여쭙고 여쭙고 또 여쭈어서 분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적인 의욕이나 자기 의로움에 빠져 있을 때는 사람이 정상적인 분별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기뻐하실 일인 것 같고 또 하느님께서 하라고 허락하신 일인데도 자꾸 결과가 실패로 나타난다면 오히려 이게 나에게 성찰과 분별의 기회를 제공하는 복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실패와 좌절을 겪고 나서 그 과정을 성찰하다보면 늘 새롭게 알게 되는 내 안의 이기심과 공명심, 나만의 의로움과 남을 얕보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실패와 좌절은 결코 알 수 없는 내 내면의 감추어지고 포장된 모습을 알게 되는 기회이고, 또 이런 나를 사랑하시며 이끌어주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느님께 세 번씩 여쭤야 하는 이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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