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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월 21일 야곱의 우물- 루카 19, 45-48 묵상/ 성전을 지키는 이들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21 조회수507 추천수6 반대(0) 신고
성전을 지키는 이들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어 물건을 파는 이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도를 찾지 못하였다. 온 백성이 그분의 말씀을 듣느라고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루카 19,45-­48)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어느 나라를 가나 중세 이래 건축으로 대표되는 그리스도교 문화유산의 풍요로움을 실감할 수 있다. 관광객다운 호기심 충족보다 성지를 순례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경외심을 새롭게 하는 은혜로운 경험을 한다. 열차를 타고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는 그림 같은 마을에 십자가 첨탑을 높이 세운 교회가 긴 세월 동안 이정표이며 구심점이었음을 본다. 큰 도시의 대성당은 너른 광장을 앞에 펼치고 우뚝 솟아 시민들의 자긍심을 북돋우며 위용을 자랑한다.
 
성화와 조각상 등 예술 작품을 품은 다양한 양식의 건축이 날렵한 현대식 건물 사이로 숨바꼭질하듯 어우러져 있다. 그 고풍스런 자태 속에 위대한 신심 표현이 이어진다.
그런데 막상 육중한 성당에 들어서면 미사시간에도 신자들보다 두리번거리는 관광객이 더 많아 주객이 뒤바뀐다. 성당이 개신교 예배당으로 바뀐 건 그럴 수 있다 싶지만 대부분 도서관이나 박물관으로 용도가 변경되는 현실이다. 심지어 성당 내부를 개조해 나이트클럽으로 탈바꿈한다니 서구 사회의 세속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 단면을 볼 수 있다. 그리스도교 문화권에서 벗어나고 있는 오늘의 유럽에서는 지난날 찬란하게 꽃피웠던 신심이 역사를 등지고 쇠락하는 것 같아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신랄한 꾸짖음을 듣는 유다인들의 폭력적 위선은 이 시대 서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신심의 황폐화보다 증상이 더 심각한 듯하다. 하늘의 선택받은 백성이란 자부심을 가진 유다인들이 성전에서 하느님을 팽개치다 못해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니! 성전이 거룩하다는 것은 건물의 웅장함이나 장식의 아름다움과 상관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리스도교 신앙 공동체는 예수님 말씀과 성체성사를 중심으로 모인다. 우리 교회는 예수님을 등한시하는 세속화의 현장이 될 유혹에서 과연 자유로운가? 성전에서 예수님을 몰아내고 세상 권력으로 지배하려는 어둠의 세력이 칼날 같은 틈을 엿보고 있다. 마음을 열어 예수께 집중하는 일만이 우리가 그분을 지켜드릴 수 있는 길이다. 성전을 가리켜 ‘기도하는 집’이라 하신 말씀을 생각하면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장소는 어디나 성전이 될 수 있다.
 
유럽 여행 도중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성심성당(Sacre Coeur)을 밤늦게 방문했을 때 받은 인상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다. 아름다운 성당 안에서 은은한 촛불 빛을 받으며 간절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영혼을 들어 올려 예수님과 온전히 하나 된 듯 깊이 빠져 있는 모습은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왔다. 참된 기도의 힘으로 성전을 밝히는 신앙인들이 있는 한 교회는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 구원의 사명을 다하게 되리란 믿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쇠약해가는 서방 교회는 외적인 모습일 뿐, 그 너머에 성전을 지키는 이들의 믿음을 하느님은 보고 계신 것이 틀림없다.
원영배(미국 로스앤젤레스 대교구 종신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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