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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인생의 소믈리에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30 조회수565 추천수6 반대(0) 신고
 
 
 
 

내 인생의 소믈리에 - 윤경재

“그러나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주인이 갑자기 돌아와 너희가 잠자는 것을 보는 일이 없게 하여라.” (마르코 13,32-37)

 

 오늘이 연중 마지막 날이군요. 연말연시를 맞아 힘들게 보낸 한해와 좀 더 나은 새해를 위해 여러 모임에서 망년회나 신년회를 열겠군요. 그런 모임에서는 의례히 술자리가 빠지지 않습니다.

 술과 관련한 직업 중에서 소믈리에라는 포도주 시음사가 있습니다. 포도주의 맛과 빛깔, 향취를 감별하여 평가하는 직업입니다. 그들이 늘 포도주를 마시기에 자칫하면 술 중독에 빠질 것이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그런 일이 거의 없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술을 취하려는 도구로 삼는 것이 아니라 술을 음미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술에 관하여 깨어 있어야 제대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믈리에가 추천하는 포도주 음미법은 매우 세심합니다. 먼저 알맞은 양을 유리잔에 따르면서 풍겨 나오는 향기를 조금 느낀 뒤에 잔을 들고 살짝 기울이고 흔들면서 눈으로 투명한 빛깔을 살펴 감상한답니다. 다시 잔을 코끝 언저리에 가까이 대고 풍겨 나오는 향기를 음미하고 소량을 입에 머금어 혀와 입안에서 구슬을 굴리듯 맛을 느끼고 천천히 목젖으로 넘겨 포도주가 지닌 단맛, 신맛, 떫은맛, 쌉쌀한 맛 등 고유한 맛을 찾는답니다. 거기에다가 마지막으로 뒷맛까지 꼼꼼하게 살핀답니다.

 생산 지역마다 맛이 다르고 술 빚은 연도 마다 차이 나는 포도주만 소믈리에가 있는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소주도 회사마다 맛을 감별하고 평가하는 소믈리에가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자세에서 단순히 술을 마시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지금 무엇을 마시는지 알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술을 음미도 하지 않고 퍼 넣는다면 취하게 만들어 술은 곧 우리를 지배할 것입니다. 술 마시는 처음 의도가 사라져 내가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이 자신을 마셔버리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술에 취하자는 단순한 목적을 이루는 것만이 기쁨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과정을 세심하게 거쳐 나가면서 얻는 기쁨이 더 크다는 것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멋진 결과를 한꺼번에 쟁취하는 것보다 그 일에 몰두하여 그 일이 주는 행복을 더 값지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삶도 이와 같습니다. 단순히 하루하루를 피동적으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으로 만들려면 우리는 매순간 깨어 있어야합니다. 자주 점검하여 제대로 살고 있는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우리네 삶은 너무 빠르거나 아니면 반복적이어서 자칫하면 술에 중독되듯이 삶도 중독되기 쉽습니다. 정말 가치가 있는 삶, 보람이 있는 삶을 살려면 자주 멈추어 서서 반성해야 합니다.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제대로 걷고 있는가? 휘청거리지는 않는지 멈추어 설 때인지 앞으로 나아갈 때인지 끊임없이 물어봐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칫하면 나태에 빠지거나, 너무 익숙해져 무엇이든 새롭지 않고 다 아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지루하다고 느끼기까지 합니다. 그럴 때 갖가지 유혹이 찾아듭니다. 그 유혹은 바로 보이지 않는 악마의 구체적 손길입니다. 이만하면 됐다는 심정과 이정도면 어때하는 타협, 이래 봐도 내가 누구인데 하는 자만심은 모두 술 취한 이들이 보이는 추한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악마는 지금도 멈추지 않고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심지어 광야에서 예수님을 유혹하던 악마도 그냥 물러난 것이 아닙니다.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루카 4,13)라고 복음서는 기록했습니다. 그러니 우리 같이 어리석고 물러 터졌으며 진리를 깨닫기에 더딘 자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주님께서 그렇게 자주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신 이유를 이제야 조금 알아듣겠습니다.

 우리도 각자 자기 인생과 신앙생활의 소믈리에가 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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