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 남자 형제만 있어선지 조카들이 오면 귀여워서 귀찮아 하지 않고 잘 돌봐주었습니다. 그래서 친척들이 모이면 아이들 돌보는 건 항상 제 전담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과 즐겁게 놀아주는 건 잘할 수 있는데, 떼를 쓸 때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기도 합니다.
어느 날 집에 놀러 온 한 살 된 아이가 한 손에는 인형을 들고 다른 손에는 유리잔을 들고 있었습니다. 전 아이의 손에 들린 유리잔을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힘으로 하자니 아이가 울 것 같고, 내버려 두자니 위험하고. 그때 어머니가 구석에 있던 불자동차를 가지고 오셔서 아이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번쩍번쩍하는 불자동차를 본 아이는 그때서야 유리잔을 내려놓고 그 자동차를 잡았습니다. 이렇게 간단한 방법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아이들은 양손에 가지고 있는 것만 자기 것으로 느낀다고 합니다. 따라서 다른 것을 갖고 싶으면 쥐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다른 것을 가진다고 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가질 수 있고, 더 빨리 가질 수 있고, 덜 손해 볼 수 있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가진 것을 내려놓는 방법은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내려놓고 손해 보고 희생하는 방법은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것을 악이라고까지 합니다. 아무 손해나 희생 없이 더 많이 가질수록 세상은 훌륭하다고 하고 존경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것을 다 가질 수 있다 하더라도 주님이 주시는 마음의 평화와 행복과 기쁨은 받을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받으려면 아이처럼 먼저 내려놓고 손해 보고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것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무 손해 없이 무엇인가를 갖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우둔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지혜롭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오히려 어린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심’을 감사드린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최용진 신부(서울대교구 연희동 천주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