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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도하시는 길 언제나 바른 길이요.
작성자유웅열 쪽지 캡슐 작성일2008-12-04 조회수623 추천수5 반대(0) 신고
 

인도하시는 길 언제나 바른 길이요.

(신앙으로 살아가는 인간.)


목자가 양떼를 인도하는 길은 언제나 바른 길이다.

그러나 이 길은 편안한 길, 안락한 길을 가리키지 않는다.

성경에는 ‘바른 길’이 아니라 ‘곧은 길’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곧은 길이 바른 길을 의미할 수도 있겠지만

보통은 ‘구부러진 길’의 반대 의미로서 사용된다.

곧 지름길로 해석되는 것이다.


왜 주님께서는 3, 4일이면 갈 수 있는 해안 길을 두고

돌아가야만 하는 광야 길로 이스라엘을 인도했는가?


물론 주님은 착한 목자이시다.

이스라엘이 걸었던 광야 40년은 분명 바른 길이었다.

그 길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수백 년간 익숙했던 이집트의 삶을

벗어던지고 하느님 백성으로 정화, 단련될 수 있었던 것이다.


“너희는 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인도하신 모든 길을 기억 하여라, 그것은 너희를 낮추시고, 너희가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너희 마음속을 알아보시려고

너희를 시험하신 것이다. 그분께서는 너희를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신

다음, 너희도 모르고 너희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게 해 주셨다.

그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

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신명 8,2-3)


하느님은 곡선으로 직선을 그리시는 분이다.

이스라엘이 빙빙 돌아갔다고 생각했던 광야의 길은

그들을 하느님 백성으로 양성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길이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이

덜 준비된 채 서둘러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준비되어 들어가기를 원하셨다.


하느님은 우리가 모르는 것을 알고 계시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계시다.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은 항상 바른 길이다.


때로 주님께서 우리를 고생시키는 것 같아도

주님께서 친히 인도하신다면,

그 길은 우리에게 선이 되는 ‘바른 길’이다.


때로 앞이 보이지 않고 혼란스럽더라도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신다면,

그 길은 우리에게 가장 맞는 길, ‘바른 길’이다.


신앙은 인간 이해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편안하고 평탄한 길을 걸어갈 때에만

하느님께 신뢰와 신앙을 둘 수 있다면 그것은 값싼 신앙이다.


참 신앙은 가파른 길에서도,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확신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생명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하느님께서 알고 계시며 우리를 인도하심을 믿는 것이다.


흔히들 신앙의 삶이란

마치 10미터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는 것과 같다고 한다.

온전히 내어맡기는 의탁의 마음이 없이는

허공에서 손을 놓을 수 없다.


신앙의 신비는

바로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자신을 온전히 내어맡기는

의탁 안에 존재한다.


주님을 따르는 그 길에서

도저히 더 따라갈 수 없다고,

투정을 부리고 주저앉아 울부짖으며

‘이제는 더 이상 걸을 수 없습니다.’하고 외치자!


주님께서 가던 길을 멈추시고 돌아서서 말씀하셨다.

“아들아, 네 믿음은 어디에 있느냐?

나에 대한 너의 믿음은 도대체 어디로 갔느냐?

나는 너를 사랑하기에 이 길을 택한 것이다.

너를 위해서 택한 길, 바른 길이다. 그러니 믿고 따라 오거라.”

(‘생명으로 가는 길’에서 읽은 영성시의 한 구절입니다.)

                                  송 봉 모 신부 지음.

오늘의 묵상:


우리가 살아오면서

이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언제 주시는 것인가?


물론 사람에 따라 다 다르겠지만

“아! 삶이란 이런 것이로구나!”하고 깨달음을

느낄 수 있는 그 시기는 모두 다 다르다.


그리고 참으로 이렇게 살아야겠다하면서

삶의 방향을 잡는 것도 언제 올 것인지를 모른다.


내가 좋다고 생각한 것이

모든 이들에게 다 좋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가 한 행동에 대하여

아무런 반응이 없다고 그것이 나에 대한

긍정적 반응이라 생각하는 것도 잘못일 수 있다.


성경의 말씀은 주로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서로 얽혀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사람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내가 평화를 누리면서

즐겁게 그리고 기쁘게 살 수 있는 가나안 땅의 삶은

어떤 지리적 장소의 개념이 결코 아닙니다.


어쩌면 내가 살고 있는 내 집에서

내 아내와 자녀들 그리고 일가친척들 또는 내 이웃들과

함께 어울려 살면서 주님이 주시는 참 평화를 누리면서

사는 상태를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말에서도, 또 저 사람의 말과 행동에서도

언제나 여유롭게 참으며 부드럽게 받아들여서,


그것이 비록 나의 마음을 산란케 할지라도  말없이 또는

즉각적인 내색을 들어내지 않으면서,


내가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하는 선택이

나에게 있음을 깨닫는 데도 무척 시간이 많이 걸렸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주님의 자비하신 은총으로 우리들을 보살피시어

주님이 주시는 참 평화를 이웃과 함께 누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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